[기고] 들국화는 피었는데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보고>
[기고] 들국화는 피었는데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보고>
  • 김현주 단체팀장 대전지방보훈청
  • 승인 2017.09.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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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는 피었는데’는 1974년 제작된 반공영화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제작한 국책 영화로 이만희 감독이 연출했으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단체로 인근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돌이’라는 10살짜리 꼬마 남자 아이는 휴전선 인근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가족들과 주변 부대에 근무하고 있는 군인아저씨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그 마을에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여 군인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갔고 마을 주민들도 피난길에 올랐다. 돌이네 가족들도 피난길을 떠나려 하나 할아버지는 조상들이 물려준 집을 떠날 수 없다하여 할아버지만 집에 남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피난길을 떠났다.
집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인민군들에 의해 피살당했고 피난길에 오른 돌이 가족들은 폭격으로 죽고 누나와도 헤어져 돌이는 외톨이가 됐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탱크를 앞세워 전진하는 인민군들을 방어하기 위해 적의 탱크를 향해 초개와 같이 자신을 던지며 희생정신을 선보인다.

드디어 1950년 9월 28일이 되었다. 6월 28일에 북한군에게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90일 만에 되찾았다.
돌이와 누나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지만 고향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다. 철교는 폭격으로 모두 파괴돼 다리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가옥들도 대부분 불에 타 그 잔해만 남아있었다.
서울을 빼앗긴 후 3개월 동안 무시무시한 폭력과 공포, 무자비한 테러를 경험해야 했고 서울 수복은 그 공포 속에서 우리를 구출해 주었다.

폐허가 된 마을 곳곳에 들국화를 비롯한 들꽃들이 피어있었다. 폐허가 된 마을과 그 사이사이 들꽃들이 핀 광경은 전쟁의 상흔을 더 아프게 한다.
꽃은 다시 피었지만 전쟁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6·25전쟁, 민족상잔의 상처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도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하루 빨리 평화 통일을 이뤄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안착하길 두 손 모아 바란다.[김현주 단체팀장 대전지방보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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