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결혼한 딸에게 띄우는 편지.
[김강중 칼럼] 결혼한 딸에게 띄우는 편지.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7.11.07 16: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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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감은 시사 문제나 사회의 이슈가 아닌 필자 개인의 소소한 얘기이다.
먼저 독자 분들께 양해를 드린다.
딸을 출가시키며 울컥했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곱게 잘 자란 준 막내 딸, 한솔아.
눈부신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 네 결혼을 축하하듯 하늘은 천국의 날씨처럼 푸르렀다.
아빠는 엄마 나이보다도 이른 결혼에 그리 마뜩지 않았다. ‘물에 빠진 ×들에게 보따리마저 빼앗긴’ 일로 여유가 없었던 것도 또한 이유다. 한 두 해 지나면 넉넉하게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돌아보면 약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고된 간호사의 길을 걷게 만든 아빠는 늘 미안했다. 그래서 너를 보내면서 너그러운 아빠는 아니어도 인색한 아빠가 되기는 싫었다.

또 딸이어서 순서를 따질 계제는 아니지만 언니 보다 서두른 결혼도 좀 고까웠다.
준비과정의 서운함도 있었으나 무사히 잘 치러서 기쁘기 그지없다. 먼 길 신혼여행도 잘 다녀왔으니 감사할 뿐이다. 
내 딸로 태어나 오늘이 있기까지 기쁨을 안겨준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와 네 방을 둘러보니 차갈친 바람이 파고들었다. 마치 어린 새가 이소(離巢)한 빈 둥지를 바라보는 심경이었다.
네 엄마는 개혼(開婚)이어서 그런지 많이 긴장했던 모양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엄마와 명화 이모는 몸살을 앓았다.
무엇보다 타지 인천에서 치르는 혼사여서 걱정이 많았다. 혼례는 예의로 시작해 예의로 끝나는 것이 법도다. 소홀함과 무례가 없도록 하자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하객 분들에게 피로연 음식은 맞는 것인지, 버스 두 대로 5시간 왕복하는데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 하객은 어느 정도일지, 아무튼 걱정이 많았다.
늘 애경사를 치르고 나면 그렇듯 감사함도 많지만 섭섭함도 없지 않더구나.
섭섭함이야 쭉정이를 가리는 채질로 여겼으니 너도 괘념치 말아라. 대신 ‘사랑의 큰 빚’을 꼭 갚겠다는 하례를 인사장에 담았다.
네 혼사를 치르면서 서운함보다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 그것은 제주도에 사는 재권이 아저씨가 축하하기 위해 기꺼이 예식장을 찾아 준 것이다.
지난해 뇌졸중 발병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도 인천까지 날아 와 참석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과분한 축복은 또 있다. 다섯 달 전, 세상을 떠난 인용이 아저씨 딸들이다. 인용이 아저씨를 보내면서 느낀 비애다. 많은 친구들이 ‘정승 집 개 죽은 데는 문상 가도, 정승 죽은 데는 안 간다’는 세태를 보여줬다.
영악한 사람들이 관계 유무의 손익을 계산했음이다. 하지만 인용이 아저씨 집에 네 혼사를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저씨 딸들이 한달음 달려와 콧등이 알싸했다.
이 뿐이 아니다. 으레 결혼식은 의례적인 주례, 축가, 축하댄스 등 판박이 의식으로 진행돼 씁쓸함이 들었다.
그래서 경건한 분위기를 위해 시인인 호일이 아저씨에게 축시를 부탁했다. 나름 목적시나 문학성 없는 시를 한사코 거부하는 그런 친구다.
하지만 너희 두 사람을 위해 흔쾌히 시를 지어 낭독해 준 것도 감사한 일이다.

....’오늘 햇살을 깎으면 너무나 투명해서 참 얇게 깎아질 것 같다. 둥글고 붉은 모양으로 행복한 사과가 되기 위해’....축시 내용처럼 행복하길 축원한다.
또 멀리 미국 뉴욕, 캄보디아에서도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와서 아빠는 무척 감사했다. 
비로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앞으로 장손 며느리로서 시댁 대소사를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장손을 남편으로 결정했으니 의연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시부모, 시조부모를 공경하고 집안에서 귀염둥이가 될 때 행복이 깃들 것이다. 
노파심 당부를 하나 더 하겠다. 아빠 고향, 돈암서원의 사계(沙溪) 할아버지 유훈을 새겼으면 한다.

그 곳 돈암서원 꽃담에는 ‘지부해함’, ‘화풍감우’란 예쁜 글귀가 있다.
‘지부해함’이란 땅은 만물을 다 짊어지고,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라는 지침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또 ‘화풍감우’란 부드러운 바람과 때 맞춰 내리는 단비란 뜻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직장을 다니랴, 살림 하랴 힘에 부칠 것이다. 한 세상 살아보니 고단함의 연속이다. 그래도 남편을 웃음으로 대하고 가정을 편안한 쉼터로 만들길 바란다.
끝으로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형제 간 우애다. 서로 다른 습관과 환경으로 다툼도 있을 것이다. 살면서 사랑과 정을 저버리고 도리를 못하면 품격 없는 삶이되기 십상이다.
사랑하는 한솔아, 세상에서 성공하기보다 가정에서 성공하는 딸이 되기를 희망한다. 부디 행복 하거라.  [충남일보 김강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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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2017-11-09 10:43:42
딸을시집보내는 모든아빠들의 마음을담아 가슴이뭉클합니다...사랑하는 한솔아~~내마음이 이렇게 먹먹한데 얼마나 허전하고 그리울까나요...아빠의 기대에 어긋나지않게 행복한 가정만들겁니다...

2017-11-08 14:06:14
후웃 참고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