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성적 욕구 채우려는 싹부터 잘라야 한다
[충남시론] 성적 욕구 채우려는 싹부터 잘라야 한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7.11.2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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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혼자 견디고 계신가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한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찾아드립니다’
성희롱을 해결해 준다는 정부 제정 성희롱 캠페인 구호다.
심지어는 최근 직장 내 인사말이 “오늘 하루 안녕했습니까”보다 “오늘 하루 안전했습니까”로 바꿔지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두려울 정도로 성희롱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24년 전 한 국립대학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사건이 우리 사회와 직장 내 성희롱 관련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성희롱 사건은 교수의 성희롱을 거부한 한 조교가 다음 학기 재임용에 탈락되자 부당하다는 대자보가 대학 내에 붙였다가 거꾸로 명예훼손으로 피소됐기 때문이다.

당시는 성폭력특별법도 없었고 성희롱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해 피해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침해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6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피해자인 조교가 승소했다.
그 후 지금은 학교와 직장 등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 됐고 피해 구제 절차도 마련됐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사업주의 조치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개정안도 통과됐다.
얼마 전 신입 여직원이 남자 직원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인 한샘과 현대카드 사건, 동부그룹 회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 간호사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게 하고 선정적인 춤을 강요한 한림대 성심병원 사건 등이 직장 내 성희롱 파문으로 이어졌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직장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 됐음에도 여전히 주변에서는 충격적인 성희롱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게 터지고 있다. 남성중심적이고 위계질서 강한 기업문화가 직접 배경에서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직장 내 성희롱사건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다양하다. 사회 새내기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남자 동기로부터 몰카 범죄를 당했는가 하면 성교육 담당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인사팀장으로부터 사건 무마 회유·압력과 성희롱을 당하는 등 가까울수록 더 심각했다.
이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몰카 범죄, 회식과 술자리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은 흔히 겪고 있다. 직장 내에 만연한 성범죄의 종합판처럼 비춰지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이 터질 때 마다 시끄러우나 가해자 대부분이 상사들이거나 업무와 연관해 마주쳐 불이익이 우려돼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견디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과와 재발 방지를 바라고 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갈등과 혼란을 겪다 안타까운 상황으로 확대되곤 한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그럴듯하게 마련됐다 해도 ‘녹슬고 고장난 시스템’은 그 역할이 제대로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직장 내 성폭력은 피해자들의 ‘말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 말하기 이후 1차적인 피해보다 더한 2차 피해를 겪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직장 내 성희롱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은 국립대 조교 성희롱 사건 피해자는 ‘중도에 포기하면 또 다른 여성이 똑같은 길을 가야 할 것’같아 사회적 책무감이 답을 받아 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직장 내 성희롱은 곳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봇물 터지듯 드러나는 현실이 난감할 뿐이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성희롱 신고 건수는 지난해 보다 곱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 10월 현재까지 532건이 접수되어 당국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처지여 실제 사례는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공공기관장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성희롱이 발생하면 해당 기관장이나 부서장에 책임을 묻는 등 엄정한 조치를 지시하고 성희롱 피해를 입고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직장 분위기 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을까. 
당국은 직장 내 성희롱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사업주에게는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직장 내의 ‘성 폭력’ 관행을 뿌리 뽑는 최선의 방책은 제도가 아니고 조직 구성원들의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려는 인식이 중요하다.

직장 내 성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한 품위 있는 사회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직장 내 성범죄대책을 내놓았는데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성희롱이나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법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벌금형 또는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사업장을 근로감독할 때 성희롱 예방 교육과 사후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 역시 사업주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사업장의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를 막으려면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는 직장 내부 시스템과 문화 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든 직위를 이용해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발상은 싹부터 잘라야 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부터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충남일보 임명섭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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