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가?
[양형주 칼럼]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가?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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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쓴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16살의 주인공 미하엘은 어느 비 내리는 날 학교를 마치고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길을 가다 그만 심한 열병과 구토로 길바닥에 쓰러질 뻔 한다.
이 때 철도공무원이었던 한나가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 아픈 몸을 추스르도록 큰 도움을 준다. 몇 개월 후 몸이 좋아진 미하엘은 자기에게 도움을 주었던 한나의 집을 찾아가고, 이 때 부터 둘은 가까워져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미하엘은 학교를 마치고 매일 한나의 집에 놀러와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나누다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이렇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 이유는 사실 그녀가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하엘은 그것이 그저 사랑의 표현인줄로만 알고 한나가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문맹의 문제로 갑작스레 직장을 떠난다. 미하엘에게 아무 기별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후 미하엘은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나를 잊지 못하고 누구와도 행복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미하엘은 법대에 진학했고, 어느 날 학교에서 슈츠슈타펠, 즉 나치 친위대 전범들의 재판 장면을 참관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다. 피고석에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나가 나치 전범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하엘은 법정에서 그녀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 이후 미하엘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찾아온다. 그동안 그리워했던 그녀를 만났음에도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그녀를 거부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애경과 KTF와 같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2080치약, ‘쇼를 하라 쇼!’라는 멘트로 큰 인기를 끌었던 조서환 씨가 육군 소위로 임관했을 때 일이다.
부대에서 폭발사고가 났다. 병원으로 이송되다가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오른손이 없었다. 온 몸은 화상을 입어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사귀던 애인이 왔다. 이 모습을 보고 30분간 서로 간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직도 나... 사랑해?’ 그러자 그녀는 크게 고개를 두 번이나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근처로 이사를 와서 하루 종일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을 들은 이 자매의 아버지가 갑자기 병실로 들이닥쳤다.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자신을 보고, 또 그런 자신을 간호하는 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딸에게 ‘가자’고 하고는 손을 끌어 잡고 병실에서 끌어내다 시피해서 데리고 나갔다. 할 수 없이 아버지 차를 타고 갈 때 이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좋은 예는 아니지만 만일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시다가 아버지가 손을 다치셨다면 아버지는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으시겠어요. 엄마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다면 아버지는 어떠시겠어요. 나는 그 사람 전부를 사랑했지 오른손을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에요. 게다가 손 하나는 있잖아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사람은 반드시 일어날 사람이에요”
결국 이 여인은 조서환 성도의 아내가 되었다. 우리는 참 연약하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상대방이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면 정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가도 실망하고 토라지고 넘어진다. 나는 한 사람의 전부를 사랑할 수 있을까?[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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