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90년대에 바침
[김창현 칼럼] 90년대에 바침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12.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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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90년대는 서태지와 신해철, IMF와 금 모으기로 남아있다. 나중에 복기해보니, 90년대는 80년대, 이른바 ‘3저 호황’(저低금리, 저유가, 저달러)으로 인한 부가 사회적으로 급속하게 풀렸던 시기였다. 또한,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마저 무너졌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공식화되면서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시대유감’/서태지와 아이들).

모자 쓰고 춤추는 세 청년들은 '난 알아요'라는 도발적 제목의 노래에 회오리춤을 장착하고 등장했다. 군사독재의 시절을 기억조차 못하는 세대들은 이 회오리춤에 열광했다. 이후 댄스뮤직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장르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서태지가 더욱 주목을 받았던 것은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Come back home’과 같은 사회에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청춘들에게 지적인 감성으로 인정받은 뮤지션으로는 신해철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았던 그룹, 무한궤도의 보컬이었던 신해철은 얼마 후 솔로가수로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신해철은 프로그래시브 록그룹, 넥스트를 만들어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Here I stand for you’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이데아’로 기존의 학교 교실 풍경을 비판했다면, 신해철의 가사는 주로 도시인의 내면을 향해 있었다. ‘재즈카페’에서 그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라며 성찰을 요구하기도 했고, ‘날아라, 병아리’에서는 죽음을 가르쳐준 병아리 친구, 얄리를 회상하기도 했다. 서태지가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이데아’/서태지와 아이들)라고 속 시원하게 외치는 동안, 신해철은 “그대여 꿈을 꾸는가”(‘The Ocean: 불멸에 관하여’/N.ex.T)라고 우리에게 질문했다. 서태지는 철없는 반항아였다면, 신해철은 고독한 사색가였다.

그 이듬해인 97년에는 외환위기가 전 국토를 덮쳤다. 1997년 12월 3일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불과 39억 달러밖에 남아있지 않아 부도 직전이었으며,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부도를 면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대가는 혹독했다. IMF의 요구에 따라서 대한민국에는 구조조정, 은행의 인수합병, 정리해고 등 칼바람이 몰아쳤다.

한국 대중음악이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전후로 나눌 수 있듯이, 한국 정치경제체제는 97년 외환위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고용불안, 청년실업, 부동산 문제, 이 모든 문제는 97년 외환위기에 직간접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준 시기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기성세대의 질서에 반항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 신해철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는가”라며 자문했지만(‘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무한궤도), 대중에게 과감하게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고 집요하게 묻기도 했다(‘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모노크롬).

신해철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개인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문의 초점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억누르는 요인은 무엇인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현재 상황이 암울하다면, 다음 세대는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에 덜 시달리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90년대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여전히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충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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