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녀 표시 없는 화장실을 꿈꾸다
[기고] 남녀 표시 없는 화장실을 꿈꾸다
  • 이서빈 독자
  • 승인 2018.01.28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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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빈 독자] 학생들이 맡은 중요한 사회적 임무 중 하나는 세상이 당연시 여기는 관습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세상에 질문한다. “화장실에 정말 남녀 구분이 필요한가?”
필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로 나누어져있었기에 필자 또한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 “미래에는 화장실의 남녀 구분이 없을 것 같아”라고 말했던 친구의 말을 계기로 이 관행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다.
대표적인 피해자는 바로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렌스젠더이다. 생물학적 성별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이들은 아직도 화장실 앞에서 수많은 고뇌와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매번 원치 않는 화장실을 이용하며 수치심과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인데, 높은 확률로 주변 사람들에게 신고를 당해 끌려나오거나 극단적인 경우 집단 구타를 당할 수 있다. 후자의 선택이 가져올 파장 때문에, 대부분의 트렌스젠더들은 전자를 강요당한다.

이 문제의 원인을 사회의 규범에 따르지 않는 트렌스젠더, 혹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로 돌리면 곤란하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는 오로지 시스젠더만 존재한다는 안일한 사고, 그리고 이러한 사고에서 출발한 남녀화장실이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애초에 독선적인 사고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시스젠더들이 다른 젠더를 가진 사람들을 탄압하게 만든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젠더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트렌스젠더뿐만 아니라, 젠더가 없다고 느끼는 젠더리스, 본인이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뉴트로이스, 본인이 여성인 동시에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안드로진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까지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거나 알지만 무시했다. 그들의 존재가 지워진 세상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성별로 화장실을 구분 짓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젠더리스 화장실, 뉴트로이스 화장실, 안드로진 화장실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는 그들을 위한 화장실을 지어야 할까?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하고 싶지 않다. 필자도 안다. 그런 화장실을 모든 곳에 설치하기에는 경제적인 손실이 너무 큰데다가 애초에 젠더라는 것은 딱딱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그들이 계속해서 무시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제안한다. “우리 화장실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봅시다”
젠더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같은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상상해보자. 쉽게 말하자면 모든 화장실이 성 중립 화장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화장실은 한국의 공용화장실처럼 소변기가 바깥에 노출되어있는 형태는 아니다. 그 대신 모두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을 것이다. 어쩌면 성 중립적으로 디자인 된 변기가 기존의 소변기, 좌변기를 대체했을 수도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이 새로운 시스템은 포용적이기 때문에 본인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경계할 필요 자체를 없애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화장실이 범죄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우려와 타협하여 남녀 화장실의 존재는 그대로 둔 채 성 중립 화장실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방법 또한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은 따로 존중하면서도 다른 젠더들은 구별하지 않고 한 공간에 집어넣는 일 또한 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남녀 구분이 없어진다면 ‘여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이라서 범죄의 타겟이 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기에는 아직은 성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가 문제인 것이지, 최종적으로는 모든 화장실에서 성별 표기가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에 우리 사회는 본인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대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꼭 이렇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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