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명박, 현재 문재인
과거 이명박, 현재 문재인
  • 탄탄스님
  • 승인 2018.02.0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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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현재의 우리 사회는 내부적으로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며, 일자리는 사상 최악이다. 젊은이들은 가상화폐에서 미래를 찾으려 한다. 동계올림픽은 불과 수일 남았다. 그런데도 현재의 대통령 전 전 전 대통령 패와 전 대통령·전 전 대통령 패로 나뉘어서 국익에도 득이 되지 않을 정쟁에만 여념이 없다. 그러니 오늘의 시민사회가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핵심적 가치는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크게 보아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서구의 자유와 평등 개념은 그리스의 철학에서 기원을 찾지만, 근대 이후의 확산은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표명한 것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신에 의하여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 등의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한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선험적 진리로 간주함으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제한과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하는 법치주의 등의 기본권 이념과 제도가 진화한 것이다.

대중은 잊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은 본시 불교의 용어라는 것이다. 자유(自由)는 법구경(法句經)에 나와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사상인 '삶의 본질은 스스로에서 유래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平等)은 불교 사상 그 자체로, '만물(중생)은 누구나 평등하여 진리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구의 관념을 불교 용어를 차용하여 번역한 것이니 아이러니하다고 하겠다. 동양의 자유, 평등에 대한 관념은 그리하여 불교적인 색채가 있는 것이다.

서구에서의 자유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동양에서의 자유는 내면이 속박되지 않음을, 서구의 평등이 차별의 제거를 의미한다면 동양의 평등은 서로가 자제하여 조화를 추구하는 심성이 바탕에 내재되어 있는 정서이다. 우리네의 심성 속 자유와 평등도 어떠한 고유의 정신적 유산이 반영되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은 근대 이후의 사회까지 이끌어온 두 수레바퀴이다. 자유와 평등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 이념과 목표실현을 위한 핵심적 요건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된다. 우선적으로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는 것을 배제하여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 전자를 소극적 자유라 하고, 후자를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도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격차가 발생하게 되며 즉 사회적 불평등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발생될 수 있으며 스스로 노력하여 경제생활에 참여하고 수익을 창출하고 이로부터 사회적 희소가치를 배분받게 되어 다른 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오르게 된다면 당연히 평등은 깨어지고, 또 다른 개인은 상대적 박탈감 등 불평등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상호 대립되는 관점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면 평등이 지켜지기 어렵고, 반대로 평등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면 개인의 능력과 창의가 무시되는데 전통적 관점에서 자유와 평등은 이렇게 이해된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의 자유와 평등은 상호 협력적인 관점으로 이해되고 "진정한 자유란 평등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처럼, 자유와 평등은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분제가 존재하는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자유가 보장되기 어려우며 신분적 차별로 인하여 개인의 선택권이 침해되고, 행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고의 작용까지도 제한받는다.

지난 세기 독점 자본주의 시대처럼 자유만을 강조하여 이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한다면, 경제적 격차로 인하여 개인들 간의 불평등한 현상이 나타난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두 가치를 서로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평등을 일부 제한할 수도 있고, 반대로 평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최대 다수의 사람들이 최대한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조화를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없고, 개인의 행복에 장애가 될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으며 자유와 평등을 목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또한 두 가치의 균형을 위해 자유와 평등을 제한하는 과정에서도 제한의 범위를 미리 법률에 규정하여 예측 가능하도록 보장하려야 한다. 또한 자유와 평등을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으며, 침해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제 이명박의 자유는 문재인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논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명백한 심판을 기다려야 할 운명에 처하였다. 현재 지니고 가진 자들 또한 직면한 것은 권세는 결코 영원하지도 않으며 한시적임을 직시할 때 현명한 판단이 서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민중이 투쟁하여 얻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이며, 잠시 망각하여 가지고 지닌 자들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려 할 때 시민사회로부터 투쟁의 나날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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