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국 칼럼] 매맞는 신부, 매맞는 남편
[한내국 칼럼] 매맞는 신부, 매맞는 남편
  • 한내국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8.02.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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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이 만연되면서 매맞는 신부가 늘자 정부가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에 ‘인권교육’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는 타국에서 온 신부들은 문화단절과 적응 어려움으로 일상적 결혼생활을 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이국땅에서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 이런 불평등을 이번에 정부가 ‘인권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가정폭력을 줄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효성인데 이런 시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가정폭력’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사회인 키르기스탄에서는 이슬람 사제들의 조혼 강요로 15~17세 여자아이들이 폭력에 의한 고통이 매우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 공화국(키르기스탄)에서는 최소한 18세가 되어야 결혼할 수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이슬람 성직자들의 사회로 ‘니카흐’(никах)라는 결혼식이 더욱 자주 벌어지게 되었다.

이 결혼식은 대부분의 경우 구청등록소에도 등록되지않는 결혼이다. 국가가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 의식이 몰래 이뤄지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결혼 적령에 이르렀는지 아닌지를 통제할 가능성도 없다.
어느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키르기스탄 남부에서 2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 이 가운데 12%가 결혼 적령에 이르지 않은 채로 시집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신부들은 삶의 전망도 제한되어있다. 어린 신부들의 많은 경우는 슈콜라(11년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혼을 당해도 자녀 양육비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재산이나 재정문제로 다툼이 있어도 남편들을 법원에 고소할 수도 없다.  키르기스탄에서는 11명의 어린 신부 가운데 9명이 남편과 그 가족들의 심리적 혹은 물리적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등 일부 지역과 러시아남부의 코커서스 등에서는 아직도 신부를 납치하여 강제 결혼하는 ‘신부 도둑질’(краж невест) 악습이 남아있다. 그래도 이들 나라의 사법당국은 이 악습을 ‘전통’ 운운하며 별로 엄벌하지 않는다.(출처: 인권사각 지대: 키르기스탄의 매맞는 소녀 신부들)

우리의 역사를 보면 매맞는 남편도 적지 않았다.
“공주가 남편을 지팡이로 때렸다. 남편은 애꿎은 공주의 시종에게 화풀이했다. ~ 남편은 그저 울기만 했다”(<고려사> ‘제국대장공주전’)
공주는 원나라 쿠빌라이의 친딸인 제국대장공주다. 남편은 고려 충렬왕이다.
왜구 섬멸의 주인공인 최운해(1347~1404)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기를 일삼은 부인 권씨가 말(馬)의 목을 자르고, 개(犬)를 쳐서 죽였다. 도망가는 남편을 쫓아가 칼로 내리치려 했다”(<고려사> ‘최운해전’)
‘매맞는 남편’ 열전(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에는 1517년(중종 12), 판관 홍태손의 부인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온다. 남편을 “너는 추한 얼굴에 나이도 늙고 기력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혼인했느냐. 빨리 죽으라”고 구박했다는 것이다(<중종실록>). 남편과의 동침도 거부했다. 부부는 결국 ‘강제이혼’ 처분을 받았고, 남편은 군수직에서 파직됐다. 못생긴 죄로 이혼당하고, 공직에서까지 쫓겨난 것이다.

1457년(세조 3) 행호군 박윤창의 아내 귀덕도 악독했다. 남편은 한쪽 눈을 잃은 장애인이었다. 어느 날 새집을 짓다가 말다툼이 벌어졌다. 귀덕은 짓고 있던 집을 다 때려부수며 남편을 욕했다.
“애꾸눈 놈아! 애꾸눈 놈아!(할漢!할漢!) 네가 뭐 아는 게 있느냐?”(<세조실록>)
중종 때(1522) 허지의 아내는 남편을 ‘상습구타’하고, 볏짚으로 남편의 형상을 만들고는 사지와 몸통을 절단하는 ‘패악’을 저지르기도 했다.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장탄식했다. “요즘 집안을 ‘대장부답게’ 다스리는 남자가 전혀 없다”(<북학의>)고…. ‘대장부다운’ 게 다 무엇인가. 매 맞지 않으면 다행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요즘은 매맞는 아내가 ‘사회적 약자’로 보호의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흘러 온 유교중심의 한국사에서 대다수 폭력과 폭행을 일삼은 남자들의 나쁜 습성이 여전히 지금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매매혼’과 다름없는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온 타국의 여성들의 인권은 오죽할까 싶다.

지난해 다문화가정의 전화상담 15만여 건 가운데 9700여 건이 부부갈등, 4800여 건이 가정폭력에 관계 된 것이었다. 또 일반폭력과 성폭력도 1000여 건에 달했다. 앞으로는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에 인권교육이 추가된다고 한다.
매매의 성격을 띤 결혼에 인종.국작차별이 더해지면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우습게 여기는 일들이 줄어들 지가 관심거리다.

문제는 ‘말 뿐이 아닌 실효적 성과’다. 그러자면 장기대책을 통해 꾸준한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고 이를 통해 폭력문화가 발을 붙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느 여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가 나쁜 관행처럼 된 악습이나 격에 맞지 않는 파렴치한 행동을 없애자는 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지 사회적 약자 또는 여성의 문제이고 관행이라하여 더 이상 방치하는 나쁜 생각부터 모두가 고쳐 나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오래된 나쁜 습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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