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관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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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탄스님
  • 승인 2018.04.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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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강원도 정선에 사는 심가는 몇 대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양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벼슬을 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타고난 머리가 둔하여 죽어라 공부를 하여도 초시 한번 합격하지 못하고 미역국만 연거푸 마셨다.

여덟 번을 낙방한 후에 심가는 결단을 내린다. 책이며 문방구와 책상을 부엌 아궁이에 처넣었다. 그리고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백 년근 산삼 열 뿌리를 사서 이끼로 덮고 굴피로 감아 한양 길에 올랐다. 묻고 물어 남산골에 자리한 당대의 세도가 황대감 댁을 찾아갔다. 역시나 권력 냄새를 맡은 파리 떼들이 들끓고 있었다.

마침내 심가의 차례가 되어 집사의 뒤를 따라 사랑방으로 들어가자 뒤룩뒤룩 살이 찐 황 대감이 보료에 기대어 장죽을 물고 있었다. 심가는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쓴 종이를 산삼 보따리에 끼워 황 대감 발 앞으로 밀었다. 황 대감은 보자기를 풀어보더니 흡족한 웃음을 띠며 “돌아가 기다리게. 곧 연락을 할 테니” 했다. 심가는 뒷걸음으로 방을 나와 벌써 고을의 사또쯤이나 된 듯이 훨훨 나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두 달을 기다려도 가타부타 소식이 없자, 심가는 또다시 송이버섯을 들고 또다시 불원천리 한양 길에 올랐다. 소식이 없어 찾아왔다고 했더니 황 대감 댁 집사는 “한두 번 청탁으로 벼슬자리를 받으면 벼슬 안 할 사람이 없겠네”라며 면박을 줬다.

송이 보따리를 들이밀며 황 대감의 눈도장을 찍고 집으로 돌아온 심가는 눈만 뜨면 한양 쪽을 바라보았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감감무소식일 뿐이다.

심가는 또다시 논마지기를 팔아 우황이며 사향을 사서 한양으로 올라가 황 대감을 만났다.

“초헌관 자리가 하나 있어 자네를 점찍었는데, 글쎄 권 대감이 찾아와 처남에게 줘야 한다며 통사정을 해서 내가 졌네. 집에 가서 기다리게. 곧 기별할 테니.”

이렇게 몇 번을 더 반복하며 한양길에 가산을 탕진한 심가 양반, 손꼽아보니 황 대감 댁을 들락거린 지 어언 10년 세월이 흘렀고, 그때마다 욕심 많은 황 대감은 뇌물만 받아쳐먹고 그럴듯한 핑계로 애간장만을 태웠으니, 그뿐인가. 먹고는 살만하던 살림살이도 이제는 바닥이 났다.

심가는 빚을 내어 석청을 사들고서 황 대감을 찾았더니 황 대감은 앓아누워있고 그 옆을 그의 아들이 지키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황 대감은 가래가 끓는 소리로 “자네를 선전관 자리에 앉히지 못하고 내가 눈을 감을 수 없지.” 죽을 때까지도 거짓말이다.

황 대감 아들이 “소피 좀 보고 올 테니 잠시만 아버님을 지켜달라”며 나가자 심가는 벌떡 일어나 “벼슬 안 해도 좋으니 네놈한테 당한 화풀이나 해야겠다”며 가슴에 타고 앉아 황 대감의 뺨을 연달아 열댓 대 힘껏 때리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들이 돌아왔다. 심가는 “대감님 빨리 쾌차하시라고 석청을 갖고 왔습니다”라며 능청을 떨며 태연하게 말했다. 심가에게 두들겨 맞은 황 대감은 캑캑거리며 피를 토하고 말도 하지 못하며 손가락으로 심 생원을 가리켰다.

‘저놈이 나를 쳤다’는 뜻인데, 황 대감 아들은 ‘저 사람 꼭 선전관 자리 줘야 한다’로 받아들였다. 그날 밤을 못 넘기고 황 대감은 죽었다. 황 대감의 아들은 심가의 두 손을 잡고 선친의 유언을 꼭 지키겠다며 눈물로 맹세했다. 7일장을 치르는 동안 심가 양반은 물불 안 가리고 상가 일을 도왔다. 한 달 후 심가는 꿈에도 그리던 선전관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우화이지만 요즘 지방 정가 형편과 선거판, 그리고 현 시기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6월 13일 선거를 앞두고 현역단체장과 당선이 유력한 후보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무원들의 줄서기를 만든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줄서기는 ‘은밀한 거래와 무언의 약속’이 이뤄진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공무원들의 줄서기와 줄 세우기는 명백한 선거 범죄에 해당되며,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뿐이다. 선거 후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인사상 불이익을 감안하여 유력후보에게 줄을 서는 철새 공직자들의 ‘은밀한’ 줄서기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며, 줄서기 관행을 이제는 뿌리 뽑아야 마땅하다.

일부 시군에서는 이른바 ‘줄서기 보은 인사’ 설까지 나돌고 있다. 당선자 편에서 자신들의 선거를 도운 공무원은 ‘일등공신’이 되고, 낙선자에게 선을 댄 공직자는 단체장의 눈 밖에 나면서 많은 부작용이 양산되어 고질적 병폐가 되었으며 공직사회를 편 가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선거에서의 줄 세우기와 줄서기는 ‘현대판 매관매직’임에도 시정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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