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인생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일까?
[양형주 칼럼] 인생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일까?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8.04.0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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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가 36세의 나이로 스탠퍼드 의대 신경외과 레지던트 6년차였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극심한 요통이 찾아오고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CT를 찍어보니 폐암 4기였다. 그는 2년 뒤인 2015년 3월 9일 숨졌다.

의학을 공부했던 칼라니티는 뼛속까지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자인 이유는 기독교가 경험적인 기준에서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눈에 보이고 입증 가능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하여 세계관을 세우고 이를 붙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생에 찾아온 갑작스런 치명적인 질병 앞에 그는 과학적 설명만으로 인생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생의 의미의 문제로 씨름하며 그의 책에서 고백한다.
 
“과학을 세계관의 기초로 놓고 보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은 하나님만이 아니다. 신의 존재를 몰아내면 사랑과 미움과 의미도 함께 사라져 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칼라티니는 뇌를 만지고 수술하는 의사였다. 뇌 속 9cm에 전극을 심다가 1mm라도 오차가 나면 환자가 “선생님 갑자기 너무 슬퍼요”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그는 어쩌면 사랑과 도덕 같은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뇌의 화학반응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과학적 이성적 논리적 설명은 기껏해야 ‘현상을 단위로 쪼개서 다룰 수 있을 뿐’, 이것이 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고통, 미덕과 같은 인생의 핵심 요소를 포착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랑과 덕이 존재한다고 확신했지만, 과학으로는 이것을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결국 신앙의 핵심가치인 희생, 구원, 용서로 돌아왔노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폴 칼라니티는 그동안 과학을 절대시하며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달려왔던 자신의 걸음을 멈추고 새롭게 방향을 전환한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만이 전부이고 죽으면 끝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거부하던 사람에게조차 죽음을 앞에 두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까뮈는 아무리 위대한 인생의 희망도 죽음 앞에 꺾인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며,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생이 부조리라 절규한 바 있다.

과연 우리는 부조리한 인생의 허무함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 만물이 소성하고 벚꽃이 만발한 봄에 내 인생의 의미를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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