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기인(不是其人)”… 장기판의 ‘졸’과 지방선거 ‘후보자들’
“불시기인(不是其人)”… 장기판의 ‘졸’과 지방선거 ‘후보자들’
  • 탄탄스님
  • 승인 2018.04.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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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초(楚)·한(漢)으로 나뉘어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모방한 것이 장기이다. 약 2000년 전 삼국시대 이후부터 장기를 두었음을 유추하여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코끼리의 뜻글자인 ‘象’이 인도에 있었다고 하여 현대 장기도 인도가 발상지라는 설이 있으나, 중국의 남월지방(南越地方)에도 인도 못지않게 코끼리가 많았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 장기의 발상지는 중국임이 거의 확실하다. 또한 ‘象’은 실상(實相)이라는 ‘相’의 전음(轉音)이라고 하니 더욱 뒷받침이 되는 내력이다.

각설하고 ‘장기판의 졸’이라는 세간의 말이 있는데 ‘그 역할의 미비함’을 일컫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실상 장기판에서 졸의 활약은 매우 크다. 사, 차, 포, 상, 졸 나름 적격이 있어 모두 제각각의 역할이 있지만 졸의 비중도 상당하다.

초·한 대결과 각축은 호전주의자가 아니어도 범부들이 여름날 나무그늘에서 피서놀음의 장기판 전쟁처럼 늘상 흥미롭다. 그 이유는 적재적소에 포진하여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술수를 통해 게임의 승리를 이끌려는 지략이 필요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의 정치판을 연상되게 하는 듯하다.

역사에서의 항우는 유방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고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려, 죽음을 예감하고는 애첩 우미인과 신하들에게 마지막 술자리를 베풀고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를 노래하면서 자결하는데, 그의 대장부다운 기질과 장렬한 최후에서는 굴욕보다는 명예를 택한 그의 지도자적 면모를 보게 된다.

선비 엄광은 광무제와 동문수학한 사람이다. 후한의 광무제는 그의 식견과 사람됨을 높이 사 황제가 된 후에 그를 찾았으나 엄광은 끝내 출사를 고사하고 시골로 숨어든다. 그럴수록 광무제는 그를 더욱 흠모하여 끝까지 엄광을 찾아 예를 갖추었으나 다시 고사한다. 광무제도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엄광에게는 언제까지나 머리를 낮추었다 하니, 이 또한 좋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도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중국 진나라 시절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또 어떤가. 그 누구보다도 박식하고 어떤 이보다도 혜안과 높은 식견을 지녔던 도연명이 아니었는가? 그는 교언영색하는 아부행위나 남에게 드러나는 것에 소질이 없어 관복을 오래 입지 못하고 낙향을 한다. 고향으로 떠나며 다음의 노래를 지어 부르니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든 지도자는 새로이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종신제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말로는 대개 비참하다. 새롭게 탄생될 지도자에게 뛰어난 지도력을 기대하고, 또 그 정권의 리더들(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품위 있고 제대로 된 권위를 살리는 참된 지도자의 길을 기대하는 것이 시민으로서 당연하고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개혁을 이상으로 출발하지만, 개혁가가 현실을 만나 권력을 얻으면 그는 곧 새로운 기득권자가 되어 철저한 현실론자의 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은 불가분의 진리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이나 주위의 안위보다는 대중을 택하여야 한다.

기초와 광역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와 광역 지방자치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철이 돌아온 듯하다. 유권자들이 항상 균형 있게 선택하는 것 같은데, 선출하고 보면 항상 공허와 실망 사이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이제는 다른 길을 걷고 싶은 것이 비단 필자만의 ‘바람’이지는 않을 것이다.

비가 오면 짚신을, 날이 좋으면 나막신을 신고 항상 베자루(포대) 하나를 메고 들이나 촌락을 정처 없이 헤메고 다닌 포대화상은 민가나 장터에서 보이는 대로 “나 좀 달라”고 하여 얻은 것을 자루에 넣고 “이거 누구 줄까?”하고 외치고 다녔다. 개중에는 “나를 달라”고 거꾸로 손을 벌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 언제나 팔을 오므리면서 “불시기인(不是其人)”이라고 외쳤다.

불시기인(不是其人), 너는 해당자 또는 적격자가 아니란 말이다. 부담 없이 얻어서 차별 없이 베풀려 했던 포대화상. 적격자가 아니면서 손을 벌리고 나서는 불시기인(不是其人)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한다고 여기던, 역사 속에 사라진 그 숱한 영웅들. 오늘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에게 포대 화상의 ‘불시기인’이란 가르침이 어리석은 그들을 제발 좀 일깨워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적격자가 아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장기판의 졸’이라는 겸손함으로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자. 끝내 출사를 고사하고 시골로 숨어든 엄광처럼, 교언영색 하는 아부 행위나 남에게 드러나는 것에 소질이 없어 관복을 오래 입지 못하고 낙향을 하였다는 도연명처럼 살고자 하는 지극히 겸손한 인재는 아니어도 도지사, 시장은 좀 더 겸손한 적격자였음 하는 바람이다.

유권자인 시민의 한 표 한 표를 얻어 겨우 당선이 되고 나면 어느덧 교만해지고 건방져지는 선량이며 단체장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면 과연 적격자가 아니었음을 직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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