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비슷한 사람일수록 갈등·폭력 발생 가능성 커진다”
"서로 비슷한 사람일수록 갈등·폭력 발생 가능성 커진다”
KAIST, 빅데이터 분석… 사회관계 갈등 원인 밝혀
  • 김성현 기자
  • 승인 2018.04.19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 지위 및 정체성이 충돌에 미치는 영향의 조건표. [사진=KAIST 제공]
사회적 지위 및 정체성이 충돌에 미치는 영향의 조건표. [사진=KAIST 제공]

[충남일보 김성현 기자] 서로 비슷한 사람 사이에 폭력이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이원재 문화기술대학원 교수팀이 45년간의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 사고 발생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위나 정체성이 비슷할수록 갈등 발생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생각할때 사용자와 노동자, 권력자와 시민처럼 권력과 정체성이 다른 집단 사이의 갈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갈등으로 범위를 좁히면 오히려 사회적 위치가 비슷한 관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자주 발생한다.

나와 비슷한 상대방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이 발생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고,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는 원리다. 

이 원리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연구들은 제한된 인간 집단이나 동물 실험을 대상으로 한 뇌 과학이나 생화학적 지표를 통해서만 이뤄지곤 했다. 따라서 기존 연구는 인간관계와 그 관계로부터 만들어지는 정체성의 영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F1 경기를 통해 형성된 인간 행동 데이터를 이용해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 유사도를 수치화했다.

연구팀은 45년간 이뤄진 F1 경기에 출전했던 355명 사이에 발생한 506회의 충돌 사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랭킹과 같은 일차적 정체성인 객관적 성과 지표를 통제한 뒤 선수끼리의 우열, 즉 천적 관계 등에 대한 개별적 우열 관계를 토대로 선수별, 시즌별 등으로 프로파일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선수 간 프로파일이 비슷할수록(structurally equivalent) 서로 충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서로간의 승패가 비슷해 경쟁관계에서 우위가 구분이 안 되면 본인이 모호해진다고 느낀다”며 “다른 사람에게는 져도 나와 비슷한 상대에게는 반드시 이겨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현상과 F1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교수는 이에 대해 “회사나 조직에서의 경쟁관계나 우위는 데이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스포츠는 종속변수로 삼는 선수의 성과가 굉장히 객관적으로 기록된다”며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가지며 어떠한 구조적 위치에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 기본적 모델인데 F1 데이터는 그런 면에서 매우 객관적인 수치 기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경쟁이 일상화된 시장이나 조직에 적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조직 내에서 극한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조건을 밝혀냄으로써 갈등으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한 제도 및 체계 설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으로 인한 갈등은 개인적·비합리적·즉흥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개인의 폭력적 행동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이론적 시도는 매우 드물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미는 폭력적인 행위의 원인이 개인적 원한이나 욕망이 아닌 사회적 구조와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