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그 만남과 헤어짐의 철학
인연(因緣), 그 만남과 헤어짐의 철학
  • 탄탄스님
  • 승인 2018.04.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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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충남일보 충남일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맺어가며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갈수록 태산이고 고산준령이며 더더욱 첩첩산중일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맺어지는 혈연, 지연, 학연의 수많은 만남들, 또한 사내들은 더 보태어져 군대 인연이며 직장이나 사회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실속이 있든, 내용이 있든, 맺어지고 헤어지고, 선연으로 또는 악연으로 만나지는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피로 나눈 관계, 정으로 맺어진 관계, 이해타산의 협곡과 습곡 사이의 그 미묘한 감정들이 개입되고 계산적이며 마주 보고 있어도 웃고 있어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만큼이나 고단하고 피곤한 산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이랴.

이러한 이유로 사람을 피해서 깊은 산중으로 은거하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산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비 온 직후에 산길 초입은 인적이 더욱 뜸하고 사람들을 벗어나니 피곤은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진다. 이 무주공산 어디쯤 에 야트막한 초막 한 채를 짓고 진달래며 다람쥐랑 이웃하고 바위틈 석간수 마시며 고요를 들이고 살면 어떨까?

언제쯤 진정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려나? 무인암(無人庵)은 아직도 멀었는데 편해야 할 산행에 슬그머니 깔딱거리는 고개가 시작된다. 땀을 흘리며 힘겹도록 인간을 피해 온 산행이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킁킁 인간의 자취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으면 어쩔까 하고 불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때 산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순간 반갑다가도 놀라는 심정, 또 다른 마음에 백지장 같은 공포가 덮친다. 십수 년 전 이 산 계곡 어디에서 인가는 살인 사건도 일어났다는데.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 인상착의부터 살피게 되는데.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심사가 간교하던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불안하더니 사람이 나타나도 불안하여지는 산길에서 어디서 어디로 도피 중이었을까?

다시금 발길을 되돌려 오던 길을 내려가기로 작정한다. 인간 세계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진창의 징글징글한 나의 사바를 향하여 성큼성큼 재빠르게 내려가는 발길이 가볍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올라갈 때는 꽃을 보지 못하였지만, 내려 갈 때 보았다는 그 한송이 꽃”처럼 무수히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관계에서 헤어지고 나니 그 향기가, 그 여운이 오래도록 가는 사람이 간혹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오로지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에 미처 볼 겨를도 없었고 숨이 차고 힘들어서 마주 볼 여유도 없었다. 참 아쉽다. 올라갈 때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떤 모양인지 무슨 색깔인지 자세히 보면서 그 꽃들과 대화도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내려올 때에야 보였다니 정상에 오르고 난 후, 이루고 난 후 천천히 내려오니 그때서야 제대로 보였다는, 내려올 땐 그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인데, 그래도 여전히 꽃들과의 대화는 이제 어려운 일이 된다. 안타깝게도 그냥 스쳐 지나가고야 마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네 인간관계도 모두가 그러한 이치이다. 성취만을 위해서 부지런히 매진하고 오르려 할 때에는 주위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이질 않지만, 모든 걸 이루고 나니 불현듯 생각이 나는 것이다. 내리막 길에 내려갈 때에야 사람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꽃은 사물이니 그대로 일지 모르나 사람의 인정은 그렇지 아니하다. 모두 멀어지고 떠나고 없어진 이후이다. 사람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모두 사라지는 거다. 다시 만날 수가 없다.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한 인연들. 지금은 귀찮고 밉지만, 술값 밥값 좀 들어가지만, 돈 좀 꾸어 달라 하여도 다시 보고 올라갈 때에 보도록 하자. 올라갈 때에 만나고, 올라갈 때에 챙기고, 올라갈 때에 보살피고 쓰다듬어 주며, 주위의 그 소중한 사람들이 내려갈 때는 이미 없으니 올라가는 길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더라도, 행여나 끝까지 못 올라갈지라도, 꽃보다 아름다운 주위의 사람들만은 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살피고, 챙기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지 않는가? 화향(꽃향기)은 백 리를 가지만 인향(사람의 향기)은 만 리를 간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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