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영웅’ 그랜드 마스터, 준 리를 추모하며
‘태권도 영웅’ 그랜드 마스터, 준 리를 추모하며
  • 탄탄스님
  • 승인 2018.05.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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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미국 이민 사회에서 태권도 대부로 불린 미국명 준 리(이준구) 10단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고 한다.

필자도 미국의 메릴랜드주에 머물며 어찌하여 그분과 작은 인연을 맺고 교류도 하였는데, 많은 아쉬움과 슬픔이 따른다. 워싱턴 지역의 한인사회의 모임으로부터 작은 상을 받기도 하였던 필자에게도 음으로 양으로 여러 차례 도움을 주기도 하였던 준 리옹의 영전에 부디 이고득락하시길 빌어 드릴뿐 이다.

한국인이 어렵사리 미국으로 이민하여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이 옹처럼 이민사회에서 큰 업적과 대단한 성공을 이루기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한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 홍콩의 액션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 등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미국 ‘태권도 대부’로만 알려진 이 옹은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등 미국 워싱턴 정계 상하원 의원들의 ‘태권도 스승’ 이기도 하다.

1932년 충남 아산 출신으로 16세 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후 미국 텍사스에서 ‘코리아 가라테’라는 이름의 체육관을 처음 열었다고 한다.

1956년 단돈 46달러를 들고 유학생 신분으로 도미하여 텍사스대 토목공학과를 다니면서 텍사스에 ‘코리아 가라테’라는 이름의 체육관을 열고 미국에 태권도를 확산시킨 태권도계의 진정한 대부였다.

이어 1962년 워싱턴에 ‘준 리 태권도’를 차린 후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유명한 액션배우 리 샤오룽(李小龍)과 전설의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한데, 생전에 “리 샤오룽은 1960년대 초반 시애틀에서 만나서 발차기를 가르쳐 줬고”라고 하였던 인터뷰 기사를 접해 본 적이 있다.

미국 의회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이 옹은 유명인이었다. 1965년 연방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태권도 무료 강습을 시작하며 미국 정계에 상당한 ‘태권도 인맥’을 쌓은 것으로도 유명하데, 당시 제임스 클리블랜드 하원의원이 강도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 클리블랜드 의원에게 전화를 하여 “태권도를 배우면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고 설득하여 미국 의사당 한켠에 태권도 교실을 만들기도 하였다.

밥 리빙스턴, 톰 폴리,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을 포함해 의원 출신 문하생만 350여 명에 이른다.

“1973년 이소룡이 사망할 때까지도 연락했다”면서 “알리에게는 아큐 펀치(Accu-Punch·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주먹 쓰기)를 알려줬는데, 이걸로 영국 챔피언 리처드 던을 물리쳤다”고 말하기도 하며 늘 자랑스레 말하던 준 리옹의 강인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인 유미 여사와 결혼하여 ‘한국 사위’로 알려진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의 부친인 로런스 호건 전 하원의원도 현역 시절에 이 옹에게서 태권도를 배웠다. 이 인연으로 호건 주지사는 2016년 ‘메릴랜드 태권도의 날’을 지정했고 매년 4월 초면 기념식을 열고 있다.

전설적인 무도인 준 리 아니, 이준구 10단은 최초로 태권도 안전기구(보호구)를 선보여서 국제대회 개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이소룡 등과 태권도 영화에도 출연하여 헐리우드 뿐 아니라 태권도를 미국사회에 각인시킨 진정한 장본인이다.

또한 1975년에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상·하원 의원 태권도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기도 하고 이러한 여러 공로로 이 옹은 2000년 1월에는 미국 정부가 선정한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인’의 한 명으로 선정돼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름이 실렸다.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체육·교육특별고문위원을 거쳐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정책자문위원에 이르기까지 3대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위원직에도 머물렀다.

워싱턴DC에 태권도를 전파한 지 40년을 넘긴 2003년 6월 28일, 당시 워싱턴DC 시장은 동양인 최초로 미국 의회의원들의 추천을 받아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3만 명이 운집한 축구장에서 ‘준 리 데이(이준구의 날) ’을 선포하기도 했다.

일흔을 넘겨서도 매일 팔굽혀펴기 1000개를 하였다는 이 옹은 7~8년 전 대상포진이 발병한 뒤부터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철의 무도인에게도 세월과 늙음을 이겨 낼 도리는 없었는가 보다.

버지니아의 한 병원에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며 고인이 생애 마지막으로 당부한 ‘진실한 세상 만들기 운동(TRUTOPIA)’을 이제 한국 이민 사회가 가슴 깊이 새기고 오래도록 그 유지를 기르길 고대한다.

‘그랜드 마스터’로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아오며 태권도 10단, 무하마드 알리의 스승, 리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전수한 전설적인 무도인, 미국의 정계, 관계, 재계에 그의 제자들이 즐비하고 이민사회에서는 화려하게 성공한 한국인으로 늘 치열하였던 준 리옹, 이제는 한 생을 마감한 이민사회의 영웅, 태권도로 이룬 대단한 성공, 준리옹의 인생에서 태권도는 시작이며 끝이된 것이다.

그분의 별세를 접하며 지난날의 미국생활에 대한 감회가 새로워진다. 이옹이 이룬 아메리칸 드림은 늘 신화였다. 필자도 늦은 감은 있지만, 미국진출에 대한 부푼 꿈이 다시금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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