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갑질 사회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
[충남시론] 갑질 사회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8.05.23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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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에서는 상점에서 고객이 소리를 높이면 그 때부터 상대를 안 한다. 계속 방해하면 경찰을 부른다. 경찰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로 인식한다. 일본은 가난해도,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천대하지 않는다. 미국은 돈이 많아도 안 되는 일이 많다. 그런데 한국은 부자들에게 가장 편한 국가이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다. 힘, 돈, 혹은 권력으로 군림하고 갑질하는 사회는 후진사회이다.
이 후진성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치관,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품격이 되는 저질 자본주의와 관료주의가 불러온 병폐이다.

요즘 갑질에 대한 이야기로 바람 잘 날 없다. 이전에는 없다가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니다. 이전에는 훨씬 더 많았지만 ‘너 하나 입 다물면 모두가 편안해’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음지에 있던 분들이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갑’과 ‘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갑은 언제나 갑이 아니다. 갑 위에 또 갑이 있어 갑과 을의 위치는 늘 바뀐다.

대통령이 그 나라에서는 갑인 것 같지만 국민 앞에서는 을이다. 경찰이 죄인 앞에서는 갑이지만 국민 앞에서는 을이다. 그러고 보면 국민이라는 이름은 민주사회에서는 영원한 갑인 것 같은데, 가난한 사람은 돈 있는 사람 앞에서 을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갑이고 누구나 을일 수 있다. 독버섯처럼 우리사회 곳곳에서 갑질은 끊이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갑질’이란,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신조어로 부당한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창세이래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갑, 을 관계의 문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갑질을 추방해야한다는 각성 운동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어떠한 제도화나 캠페인도 이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인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오너의 갑질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벌들의 갑질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권력을 가지게 되는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갑질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 자신과 내 아들과 딸, 그리고 내 가족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재벌이라고 다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LG가(家) 3세 경영인 구본무 회장의 장례는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져 재벌가에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걸핏하면 ‘꼴파 미아’라고 입에 달고 다닌다. 즉 ‘내실수’, ‘내 잘못’ 모든게 “내 탓이다”라는 뜻이다.

가수 이장희의 대표곡 “너 때문이야!”가 요즘 발표됐으면 히트는 커녕 온갖 손가락질을 당했을 줄 모른다.
이쯤에 누군가 “나 때문이야!”를 불러줄 사람없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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