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재]사적 제434호 부여 능산리사지
[우리지역 문화재]사적 제434호 부여 능산리사지
  • 이훈학 기자
  • 승인 2018.06.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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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사지는 부여 정림사지와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 유적이다. 이 유적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의 출토로 인해 일반인들과 학계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본 사지는 1985년 능산리 고분군 아래에 백제고분 모 형관 배수로 공사 도중에 수점의 연화문 와당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이후 능산리사지의 본격적인 발굴은 1992년부터 시작됐고, 2008년까지 11차에 걸쳐 발굴 조사됐다. 

발굴조사 결과 중문지,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공방지, 회랑 등 사역 중심지의 전모가 드러났으며, 사역 중심지 남쪽과 북쪽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 사역중심지 주변으로 어떠한 유구가 배치됐는지도 밝혀졌다. 

또한 1993년 2차 발굴조사 시에 공방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됐고, 1995년 4차 발굴 조사 때 목탑지의 심초석 주위에서 능사의 조성배경을 상세히 기록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발견됐다. 

이후 발굴조사 성과에 힘입어 사찰의 성격 및 축조단계, 건물지 성격 등에 대해서 학계의 활발한 논의가 전개됐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연구는 1993년 발굴 이후 도상의 배경 사상을 비롯해 향로의 기원과 형식, 조형과 제작 시기 등에 관한 수많은 논저가 발표되고 있다.

2003년에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대향로 발굴 1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모은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조사구역 현황 능산리사지는 사비 도성의 동쪽에 위치하고 능산리 고분군과 동나성 사이 능뫼골에 있다. 사지는 부여-논산 간 국도에 거의 인접해 있는데 동쪽 구릉 너머에는 능산리 고분군이 위치하고 서쪽 구릉을 따라서는 동나성이 지나간다. 

유적은 곡부로서 삼면이 산과 구릉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사지 앞쪽만 들판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북쪽에는 석목리산(해발 121.4m)이 솟아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낮은 구릉이 형성돼 있으며, 남쪽 들판 사이로는 왕포천이 지난다. 

능산리사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2년부터 2007년까지 총 11차에 걸친 시·발굴조사가 시행됐고 이에 대한 결과물로 총 5권의 보고서가 발간됐다. 본 사지는 1992년에 실시된 시굴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고, 1997년까지 1~5차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다.

1993년 2차 발굴조사는 1차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의 잔존 상태와 능산리 392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 백제 시대 건물지로 공방지Ⅰ, 서회랑지 일부, 서회랑지 밖 소형건물지 3동이 확인됐다. 한편 공방지Ⅰ의 수조 내에서 금동대향로가 출토됐고, 이외에도 각종 금제품, 금동제품, 은제품, 유리, 철제 품, 금동광배편 등 방대한 유물이 수습됐다. 

1994년 3차 발굴조사는 능산리 393번지 일대인 2차 조사지역에 연속해 그 북쪽 지역을 대상으로 했고, 조사결과 공방지Ⅱ를 포함해 강당지와 부속건물지, 불명건물지Ⅰ 및 서배수로를 확인했따. 1995년 4차 발굴조사는 능산리 392-1, 393, 394-1, 394-2번지 등 2차 조사의 동쪽 일대를 대상으로 했는데 유적을 둘러싼 배수로와 불명건 물지Ⅱ, 금당지, 목탑지, 중문지, 동회랑지, 남회랑지 등이 확인됐다. 

특히 목탑지 정중앙에서는 심초석이 출토됐고, 심초석 상면에서 심주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견됐다. 1996~1997년 5차 발굴조사는 남문지 확인조사와 배수로 등을 조사하고자 실시됐으며 그 결과 서배 수로 위에 설치된 목교지, 석교지와 대지 조성 시 설치한 암거시설 등이 확인됐다.

1999년에서 2000년까지 진행된 6차 발굴조사는 중문지 남쪽 구역의 서석교와 동석교 사이에 대한 조사로 이뤄졌으며, 도로 유구와 석조배수로, 목조배수로, 장방형 집수조, 우물 등이 확인됐다. 2000년 7차 발굴조사는 중문지 남쪽 구역의 북쪽과 중문지 남서쪽 지역에 대한 조사로 진행됐으며, 도로유구와 암거시설 등이 확인됐다. 

또한 조사과정 중 자연수로의 퇴적층 내에서 20점 이상의 목간이 추가로 발견됐다. 2002년 8차 발굴조사는 중문지 서쪽과 6·7차 발굴조사 구역 남쪽 구간에 대한 조사이며, 7차 조사에서 확인된 수로유구와 남북방향 석축기단, 추정건물지, 서대배수로, 기와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2005년에서 2006년까지 시행된 9차 발굴조사는 능산리 산15-1번지 등 중심사역 북편 외곽의 유구 유존 확인과 서대배수로의 연결 관계를 확인하고자 실시했다. 

그 결과 우물지 3개소, 집수시설, 건물지 3동이 확인됐고, 중심사역 북편으로 건물지와 수로 등이 발견돼 중심사역과는 다른 용도로 활용된 것으로 판단했다다.

2007년 10차 발굴조사에서는 동나성과 3건물지간의 선후관계, 중심사역 북편에 조성된 건물지군의 외곽경계를 확인하고자 했다. 조사 결과 우물지 북편으로 작업 장과 폐기장이 확인돼 북편의 사역 경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사역 서편의 3건물지는 동나성과의 중복 관계없이 별도로 구축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3건물 지에서는 굴절형 구들시설 2개소가 확인됐으며, 수혈 구덩이 내에서는 등잔 80여 개체를 일괄 수습했다.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진행된 11차 발굴조사는 중앙 수로와 동나성 사이 구역을 대상으로 했고, 조사 결과 와요지를 비롯해 배수로와 석렬유구 등이 확인됐다.

개별 건물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중문지는 남회랑의 중앙에 조성돼 있어 이보다 낮았던 중문 남쪽에서 중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설치했다. 목탑은 기단 너비가 11.73m로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와 비슷하여 초층 3칸의 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목탑지에서는 잘 치석된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의 이중기단이 확인됐고 목탑지의 중심 부분에서 느티나무로 만든 심주와 사리합 그리고 장방형의 심초석이 발견됐다. 금당지는 강당지의 남쪽 기단에서 남쪽으로 16m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목탑지와 같이 잘 치석된 화강암을 이용해 이중기단을 갖춘 건물이다. 

금당지 상층기단에 남아 있는 적심자리로 볼 때 금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구조였던 것으로 보이며 중앙칸이 넓고 측칸이 좁은 것으로 추정된다. 강당지는 사역의 가장 북쪽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위치하며 한 지붕 밑에 구조가 다른 2개의 방이 있고 그사이 에는 좁은 통로가 있는 구조다. 

일반적인 건물이 대체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음에 비해 좌우가 비대칭적인 특이한 구조를 가진 건물이다. 또한 강당지의 기단은 목탑지, 금당지와는 다르게 잡석과 기와편을 이용해 쌓았다. 

강당지에 쓰인 초석도 잘 치석된 화강암으로 된 방형 초석과 원형 초석 그리고 자연할석을 약간 손질한 덤벙초 석 등 3가지가 모두 쓰이고 있는데 이 초석들 중에는 다른 폐건물지에서 가져온 초석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랑은 동쪽과 서쪽, 남쪽에 둘러져 있다. 공방지1과 공방지2의 동실과 서실에서 아궁이와 소토층, 굴뚝 하부 시설 연도와 배연구 등 화로 관련 시설이 확인됐다. 능산리사지의 배수시설은 크게 두 가지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사지 전체를 에워싸서 외부로부터 사지 내 부로 흘러드는 물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사역 내부의 물을 빼내는 역할을 했던 대배수로와 사지 곳곳의 부분적인 배수를 위해 설치한 소배수로 및 암거시설 등이다. 

또한 사역 주변에는 서배수로의 남회랑지 남쪽 32m 지점에 목교가 있고, 52m 지점에 서석교가 있으며 동배수로에도 남 회랑 남쪽 52m 지점에 동석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확인되는 목교를 비롯한 다리들은 백제 시대의 교량시 설로는 매우 보기 드문 중요한 자료다. 

출토기와는 종류별로 보아 암키와, 수키와, 수막새 세 종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암막새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치미, 연목와 등의 특수기와가 소량 포함돼 있었다. 수막새의 경우 단판연화문 한 가지에 국한돼 있으면서 연판에 능선이 뚜렷한 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와 구성상의 특징은 이 유적의 기와가 백제시대 사비시기 중에서도 주로 6세기대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토기는 壺가 중심을 이루나 자배기, 완, 등잔, 뚜껑, 벼루, 연동형 토기, 청자 녹유토기 등이 있다. 공방지1에 서는 능사 전체에서 가장 많은 양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현재 능산리사지는 발굴조사 이후 잔디를 식재해 정비해 놓았으며, 기단과 초석 등의 석부재는 신재를 사용해 복원했다. 

또한 목탑지의 경우 심초석 위치에는 나무기둥을 설치했다. 한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공방지1에는 향로 발견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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