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보 이훈학 기자]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는 늘 능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오랜 정치경험에서 품어져 나오는 그의 말은 자신의 생각과 시대상을 압축시켜 표현했다.
다음은 김 전 총리의 어록이다.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자의 반 타의 반(1963년 2월 25일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년 11월 3일 관훈토론회)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뤄진다. 5·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1993년 5월 16일 5·16 민족상 시상식)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년 1월 1일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6월 13일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요즘 세대교체를 자꾸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74세에 총리가 돼 4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끌었다(1996년 5월 18일 대구 신명여고 강연)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5.29.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년 12월 3일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년 6월 27일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년 10월 16일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의 위치라는 게, 아무리 공동정권이라지만 '델리키트'하다(1998년 10월 25일 총리가 안다고 앞장서거나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년 12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 우려 관련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년 5월 2일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년 1월 9일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2005년 10월 28일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