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은 고양이와 예멘 난민
[김창현 칼럼]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은 고양이와 예멘 난민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07.02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양이는 진공청소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생존본능인 발달된 청력이,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있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최근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은 고양이의 반응을 떠오르게 한다.

최근 제주도로 건너온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두고 나라가 어수선하다.
예멘 난민은 큰 틀에서 2015년에 시작된 예멘 내전에서 발생했다. 소위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르는 2011년 중동 민주화 혁명의 물결에서 예멘도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인하여 ‘예멘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예멘 혁명’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011년 세력을 키우던 군사지도자인 후티가 사나를 쿠데타로 장악한 것이다. 후티의 쿠데타는 성공했고, 대통령은 도피했지만, 정부군은 후티를 인정하지 않았다.

후티 반군과 하디 정권의 정권탈환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이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디 정권의 편을 들면서 내전은 국제전 양상으로 번지게 된다.
이 전쟁으로 최소 1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예멘은 이미 아랍 국가들 가운데에서 최빈국 중 하나였다는 점도 기억하자.

예멘 난민 중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든 젊은 남성이었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지부티 등으로 1차 이동한 후,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로 갔다. 다음, 무사증제도로 인하여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제주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예멘 난민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입국한 난민은 후티 반군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온, 말하자면 ‘전쟁난민’ 아니라 ‘취업난민’이라는 것이다.

실제 유튜브에 보면 예멘에 남겨진 여성이 해외로 망명한 예멘 남성들을 비난하는 동영상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유에서 ‘불쌍한 피해자’인 난민들에게 잠재적 범죄자의 낙인을 씌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예멘 난민사태는 한반도가 세계에서 고립된 섬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사건이다.
‘아랍의 봄’으로 인해 중동은 정치적 안정을 찾기는 커녕 내전의 화약고가 되었고, 매년 수백만명의 난민이 유럽, 캐나다, 아시아 등 국가에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난민반대의 목소리를 진공청소기 소리에 놀란 고양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포는 당연한 생존반응이다. 하지만, 공포에 근거한 반난민정서가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지 역시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