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하나
혼밥, 혼술…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하나
  • 탄탄스님
  • 승인 2018.07.08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인생은 홀로 와서 홀로 간다’는 말에 더욱 절감하는 시기이다. 옛 어른 어느 분께서 “고단한 인생길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날이 두려워서, 갓난아이가 울면서 세상에 온다”고 불현듯 하신 말씀도 생생하기만 하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사회로 진화하고, 대가족사회에서 핵가족화되어가고 이제는 가족을 떠나서 나홀로 살아가는 혼족이 늘어가고 있으며, 홀로 밥을 먹고 나 홀로 살아가는 1인 가구, ‘혼밥’이 대세를 넘어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 간다.

매스미디어는 이를 더욱 부추기듯이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문화를 연신 보도하고 온통 ‘먹방’이라는, 먹는 방송이 각 방송사마다 경쟁하듯 편성되어 있으니 먹고살만한 세상에서 온통 사람들은 섭생에 신이 들린 듯, 한이 맺힌 듯, 여전히 집착을 하는 듯하다. 물론 인간의 오욕락 중에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논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는 이 나라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 일본도 그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가끔은 일본 방송을 접하여 보면 별반 다르지 않고 온통 먹방 일색일 뿐이다. 지난 방송분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국 출장 편과 ‘나 혼자 산다’에서 선보인 걸그룹 멤버의 혼밥 먹기를 짧게 보았는데 길게 여운이 남는다. ‘고독한 미식가’는 티비 도쿄에서 7년째 방송 중인 인기 드라마다. 중년의 주인공이 일을 하다가 식당을 찾아 혼밥을 하는 내용이 전부인데, “배가 고프다”로 시작하여 “잘 먹었습니다”로 끝나는 먹방이 핵심이다.

국내에서도 팬이 적잖다고 한다. 한국으로 출장을 와서는 서울에서 돼지갈비를, 전주에서 비빔밥과 청국장을 먹는 장면과 주인공이 독신이자 1인 오퍼상 대표로 언제나 ‘나홀로’이지만 드라마에서 ‘고독’이라고는 한 줌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냥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혼밥을 만끽할 뿐이다.

걸그룹 멤버인 화사도 마찬가지이다. 스물세 살 아가씨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대낮에 곱창집 야외 테이블에 혼자 앉아 먹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곱창구이부터 곱창전골, 볶음밥까지 해치우는 장면이 방송을 타고 이후에 몰려드는 손님으로 전국 곱창집의 재료가 동이났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이 장면 하나로 빅 데이터를 분석하여 평판하고 점수 매기는 연예인 브랜드 평판 걸그룹 부문 1위에 올랐다고도 한다.

얼마 전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냉면을 맛깔스럽게 먹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고는 어줍잖게도 소문난 식당에서 홀로 줄을 서서 냉면 한 그릇을 먹어 보기도 한 필자이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홀로 밥 먹고 혼술하고 혼자서 노는 극단적 개인화가 만연되어 가는 세상이 늘 걱정이 되어간다.

수행하는 수행자의 고독감을 모든 사회 대중이 느끼고 세상을 직관한다면야 오죽 바람직하겠지만, 세상은 그토록 부대끼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이 나홀로의 삶에 투영되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현재의 삶이 그토록 척박하여지고 피로해지는 인간관계에 원인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언제부터 혼자서 밥 잘 먹는 것이 이토록 유행이었으며 대세가 되고 인기를 끌 일이 되었던가.

교육제도의 난맥으로 조기유학 붐이 일던 한때에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홀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 후 가족을 부양하고자 혼자 남아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기러기 아빠’였다. 혼밥의 외로움을 견디어 내며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가장들, 그러나 이질적으로 변하고 부모자식지간에 추억도 없이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보니 철이든 자녀들과는 서먹해지고 거리감이 생긴 관계를 토로하던 그 가장의 서글픔에 동정이 가던 때도 있었다. 가족이란 같이 밥을 먹어야 하고 아무리 바쁘고 눈코뜰 새 없이 변화하는 세상 이어도 한 상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챙겨 주어야 한다.

반려견과 단둘이 살아야 하는 혼족이 된 이들도 밥을 홀로 먹는 것보다는 더불어 먹을 수 있도록 늘 자신도 스스로 노력은 하여야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혼밥은 영양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지 않은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미식물리학’을 창안한 영국 학자 찰스 스펜스는 혼밥은 건강한 음식을 먹을 확률을 낮추고 비만의 위험을 높이는 등 신체와 정신적 안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였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은 “혼밥 문화는 인간관계가 파편화되는 사회적인 위기”라고 평하였으며,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역시 “혼밥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사인”이라며 부정적인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반면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인 교수 최인철은 ‘함께하는 쾌락’과 ‘홀로인 의미’를 구별하면서, 혼자가 갖는 ‘의미의 행복’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지만, 먹고 살자는 것이 결국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고 정부의 정책도 ‘가족과의 저녁이 있는 삶’을 공약하지 않았던가.

먹는다는 것을 단순히 식사, ‘함께 먹는 즐거움’과 ‘혼밥이 갖는 자유의 의미’라고 할까. 의미를 중시하는 태도가 즐거움을 중시하는 태도보다 삶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혹은 공공장소에서 혼밥을 하는 사람은 자신감과 성취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으며, 음식 비평가 제이 레이너는 ‘혼자 먹는 저녁이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바로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식사’라는 자기애 충만한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자발적 혼밥’이 대세가 되지는 않으니 희망은 있다. 한 시장조사 전문 기업이 지난달 내놓은 설문 결과에 따르면 혼밥의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 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이 번거롭고’, ‘밥을 먹을 때만큼은 주변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많았다. 혼밥, 혼술, 혼자 노는 세상 사람들. 인생은 얼마나 더 외로워 져야 할는지.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혼밥을 해야 하는 ‘비자발적 고독한 미식가’가 될 때는 고운기 시인이 추천하는 비빔밥을 권한다.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무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