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흡연자... '사회적 갈등' 심화
갈 곳 잃은 흡연자... '사회적 갈등' 심화
금연정책 확대 불구 흡연구역 지정 등 대안마련 소홀
정부·지자체, 간접흡연 피해 예방 위한 분리정책 시급
  • 김성현 기자
  • 승인 2018.09.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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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김성현 기자]  "이런 XX 담배 냄새 꺼져버려"

며칠 전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초등학생 무리가 주차장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던 할아버지에게 욕설을 하고 있었다. 70대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욕설과 비난에 조용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손자뻘 되는 아이들에게 심한 욕설을 들어 화가 날 법도 한데 할아버지는 '죄인'이 되어버린 듯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모 할아버지(72)는 "학생 부모들이 흡연자에게 욕설하라고 가르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이러한 일을 자주 당한다. 하지만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혼내기도 그렇고 난감하다"며 "이제는 주차장 구석도 흡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금연정책에 따라 흡연자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금연구역이 늘어나면서다. 거리로 내몰린 흡연자들은 비흡연자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흡연하는 것만으로 '죄인'이 되어가고 비흡연자 또한 흡연자들이 거리로 내몰린 탓에 간접흡연에 노출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국내의 모든 음식점 등 영업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실내외 금연구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교육 시설은 물론이고 체육시설, 의료기관, 교통시설, 게임방, 만화방, 숙박업소 등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외부시설 역시 버스정류소, 택시 승차대, 지하철 주변, 거리, 광장, 공원, 놀이터 등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심지어 아파트 실내 흡연도 금지돼 흡연자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흡연자들은 자연스레 거리로 내몰렸다. 흡연자들은 도로 구석, 주차장 구석 등에서 담배를 태우지만 이마저도 비흡연자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흡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늘어난 금연 공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흡연공간에 길거리로 내몰린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흡연자 김모씨(43)는 "이제는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 돈 내고 담배를 태우는데 이 정도로 힘들게 피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담배 판매를 중단시켜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흡연자 최모씨(27)도 "도로 구석에서 담배를 피워도 눈치가 보인다"며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최대한 조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무슨 범죄자를 보는 눈빛으로 봐 화가 많이 난다"고 밝혔다.
 
비흡연자 또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전 서구에 거주하는 강모씨(여.38)는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면 솔직히 짜증 난다 .아이가 간접흡연을 하게 되니 아이 건강도 걱정된다"며 "어디든 흡연 부스를 만들어 흡연자들이 길거리에서 못 피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흡연자들은 흡연 부스를 늘리는 등 흡연자에게도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흡연자 이모씨(33)는 "현재 정부는 비흡연자와 갈등만 심화시키는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정부는 금연 공간만큼 흡연공간 또한 늘리는 등 흡연자에게도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금연정책 등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 흡연율이 높은 일본은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해주면서 간접흡연을 낮추는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다.
 
공공시설, 식당, 커피숍 등에 흡연 부스를 설치하는 등 금연구역을 늘리면 흡연 구역 또한 늘려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분리하는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흡연자의 동선에서 떨어진 곳에 흡연공간을 설치하는 등 흡연자 비흡연자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금연정책에 대해 흡연자들의 인식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대전시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흡연 구역을 늘려 분리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흡연자들이 흡연 구역 외의 공간에서 담배를 피워 흡연 부스가 흉물처럼 방치되는 등 실패한 사례가 많다"며 "금연구역과 흡연 구역을 동시에 늘리기 위해서는 흡연자들의 인식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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