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관계의 걸림돌을 어루만지라
[양형주 칼럼] 관계의 걸림돌을 어루만지라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8.10.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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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는 ‘퍼’라는 공식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쌀국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가리켜 ‘이태리 밀국수’ 또는 ‘이태리 밀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항상 스파게티 또는 파스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왜 그럴까? 우리에게는 은연중에 베트남은 못사는 나라, 이탈리아는 잘사는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재료가 비슷하게 들어가도 스파게티가 가격이 30-50% 이상 비싸다.

원래 쌀국수는 1880년대 중반에 베트남을 점령했던 프랑스군이 쇠고기 요리법을 전해주면서 쇠고기를 쌀국수와 함께 먹으면서 오늘의 퍼가 되었다.

‘퍼’라는 이름도 ‘불’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프’에서 왔다고 한다(정한업, 「차별의 언어」). 이런 면에서 쌀국수 퍼는 베트남과 프랑스의 퓨전요리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원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베트남에서 옛날부터 먹었겠지’하고 무시한다.

전에 서울의 한 대학원에 유학 온 베트남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어릴 때부터 베트남에서 발레를 꾸준히 배워왔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몸이 굳지 않도록 대학교 근처에 있는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강사의 한국말을 알아듣는 것이 서툴러서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강사가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베트남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강사는 비꼬는 듯한 어투로 ‘아니, 베트남에서도 발레를 가르쳐요?’라고 반문했다.

내성적인 이 학생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그날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강사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우습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베트남은 발레에 상당히 익숙하다.

먼저 발레는 원래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프랑스에서 완성된 무용이다. 러시아가 아니다. 그래서 발레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도 대부분 프랑스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부터 베트남은 약 100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에서 프랑스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다. 한국보다 훨씬 더 발레에 익숙한 나라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스스로가 세운 편견으로 담을 쌓고 산다. 한국사회에서 늘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은 ‘울타리’의 줄임말이다. 늘 언어 가운데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강력한 집단성과 함께 배타성이 베여 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인간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나는 과감히 이런 배타성을 억누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변의 어색하고 껄끄러운 관계의 걸림돌을 어루만지고 녹이고 치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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