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내륙국의 왕자, 스위스
[김창현 칼럼] 내륙국의 왕자, 스위스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11.0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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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에게 스위스는 ‘칼의 나라’였다. 그 시절, 스위스 칼은 작은 가위와 병따개, 그리고 과일 깎는 칼이 알뜰하게 들어가 있는 보물이었다.

20대 때 스위스는 나에게 손목시계의 나라였다. 사고 싶은 손목 시계는 모두 스위스 제품이었다. 시계의 나라라 그런지 스위스에는 동네마다 시계탑이 있어서 손목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잃을’ 염려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의 공무원이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광양자설과 특수상대성 이론 등을 담은 주옥 같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아직까지 베른 역사박물관에는 아인슈타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금융지리학을 공부할 때 스위스는 금융의 나라였다. 흔히 스위스를 ‘조세피난처’의 원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스위스는 안전한 ‘금고’를 제공하는 오랜 금융 국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스위스 은행은 범죄조직이 눈 먼 돈을 숨겨놓는 은신처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매트 데이먼 주연의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스위스 비밀금고 계좌번호가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한가지 생각해볼 점은, 눈먼 돈을 비롯하여 자본이 모이는 이유가 단순히 ‘보안유지’와 ‘조세포탈’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위스는 OECD에서 가장 낮은 세부담율과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등으로 자본거래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스위스는 ‘이자 낳는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적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인데, 글로벌 금융의 은신처로서 누리는 반사이익도 만만치 않다.

덕분에 스위스의 1인당 GDP는 전세계의 1-2위를 다투는 데 금융산업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무엇보다도 스위스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곳곳의 ‘아름다움’이다. 시골마을 작은 집도 정갈하게 관리되어 자연이 선사한 거대한 화폭의 한 요소가 된다.

한국의 아파트들이 산에 강제로 못생긴 말뚝을 박아놓은 것처럼 우뚝 서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된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하여 스위스에는 빙하가 녹아 새로운 호수들이 생겨난다는 소식도 있다. ‘트리프트 호수’는 빙하로 있을 때보다 호수와 물웅덩이가 생기고 나서 관광객이 훨씬 늘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앞으로도 스위스에 더 많은 호수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호수가 생기면 관광객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 수력발전소를 세우는데도 유리해진다고 하니, 기후변화에서도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는 곳이 스위스이다.

좀 생뚱 맞은 이야기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에서 파격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스위스에서 ‘합리적’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스위스가 국민의 기본소득을 국민투표로 물을 만큼 발전한 직접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네팔, 라오스와 같이 바다를 접하지 않은 내륙국 역시 바다를 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제발전이 어려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스위스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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