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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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1)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19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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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 영국의 작가 제프리 초서(1340-1400)의 캔터베리 스토리에 나오는 그리셀다의 장면. 초서는 중세의 영어를 문학적 표준으로 확립하여 영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신화 속의 여인이 말을 타지 않고 알 몸 그대로 시내를 걸어간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것은 비극이며, 에로스가 아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는 하나의 페이서스(pathos)로 다가온다.
연민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소재는 중세기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ser, 1342-1400)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 중에 나오는 ‘그리셀다’에 관한 이야기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30명의 등장인물이 저마다 여행, 순례, 사랑, 남편 다루기 등 각기 다른 이야기를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초서 본인과 수습기사, 수사, 탁발수사, 수녀원장, 요리사, 선장, 변호사, 의사, 신부, 옥스퍼드의 학자, 목수, 염색공, 농부, 결혼을 다선 번이나 한 중년 여인 등 29명 등 삼십 명의 각계각층 인물들이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런던의 한 여관에 투숙하여 일행이 만들어졌고, 이들 여행자집단은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저마다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제일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한 자에게 상으로 잔치를 해주기로 하였다.
이런 규칙에 따라서 경건한 자들과 세속의 사람들이 어울려 각자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 속에 참여하고 웃고, 비판하게 된다.
이들 이야기는 마치 점잖은 체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서 듣는 잡스러우면서도 익살스런 스타일의 문학이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여성을 찬미하기보다 경멸하는 어조로 이야기하고 육체적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서민적 우화, 즉 일종의 파블리오(fabl iau) 형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서부지방인 롬바르디아와 경계를 이루는 어페닌 산맥 끝자락에 경치 좋은 구릉과 평원지대에 살루초라는 지방이 있는데, 이 지방을 세습에 의해 지배하던 후작으로 월터라는 군주가 있었다.
월터 군주는 부인 ‘그리셀다’의 인내심을 세 번에 걸쳐 시험하고 마지막에는 그녀를 궁전에서 내쫓고 맨발에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속옷 바람으로 자신의 왕궁에서 친정 집까지 걸어가라고 명령했다.
비록 그녀가 모든 정신적 고난에도 인내하는 위대한 영혼을 가졌음에도 이처럼 알몸이나 다름없는 초라한 속옷차림에 맨발로 시내를 걸어가는 그리셀다를 본 시민들은 그녀에게 커다란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보카치오(Boccaccio)가 쓴 데카메론의 10일 째의 열 번째 이야기인 ‘그리셀다 이야기’는 다시 페트라르크(Petr arch)에 의해 다시 라틴어로 쓰여졌고, 이 것을 초서가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을 여덟 차례나 여행 한 가운데 1372년 9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시인 페트라르크를 만나 그가 라틴어로 집필한 그리셀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를 문학에 사용했다.
그리셀다는 아내의 모델로서 모방할만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 여성상을 극복하는 교훈으로 제시된 것이며 초서가 쓴 내용을 먼저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살루초 지방의 군주 월터는 인기 있는 지배자였지만 결혼을 하지 않아 후사가 없는 것이 결점이었고, 신하들은 군주가 결혼하기를 원하여 수없이 권고하였다.
신하들의 권고를 받은 군주는 자신이 선택한 신부를 신하들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 줄 것을 조건으로 하여 결혼에 동의한다.
군주가 선택한 신부는 그리셀다였다. 아름답고 후덕한 그녀는 월터의 궁전에서 멀지 않은 마을의 오막살이집에서 사는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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