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위로해주는 항아리- 보물 1437호 달항아리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위로해주는 항아리- 보물 1437호 달항아리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8.12.04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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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서울로 강의하러 새벽부터 기차를 타러갑니다. 17호차에 좌석이 있답니다. 구두를 신고 17호까지 걸어가면 저는 아마 기진맥진할겁니다.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도 프로강사의 자기관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특실을 끊습니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기차에 오르니 혼자앉게 되는 제 자리에 중년의 부인이 앉아계십니다. "제자리입니다"라고 말하니 고개짓으로 "그 옆에 앉으면 안되겠어요?"하네요.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술떡이 된 아저씨가 거하게 주무시고 있네요.

갑질이 몸에 베어버린 아주머니의 저 몰지각한 행위는 어제 오늘일이 아닌 듯 했습니다. "굳이 1만9300원짜리 자리가 있음에도 3만6000원짜리 자리를 지정해서 잡은 이유는 있지않을까요?"라고 생각하고 너무 화가 나서 당당하게, "네"하고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미 내 맘은 상했지만 저사람 맘까지 상하게 할 것은 뭔가…, 그렇게 새하얀 정장을 입고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저 많이 컸지요? 배운다는 건 나누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은 겸허히 손해를 껄껄 받아내는 여유라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속이 뱀또아리 틀리듯 꼬여있는건 뭘까요? 본심?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보셨어요?
도자실 가장 마지막 작품이 뭔 줄 아세요?
바로 달항아리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큰 의미를 둡니다. 아무 유물이나 두지 않습니다.
넉넉함은 인정. 그러나 달항아리는 한쪽으로 기울고 안에 담았던 내용물이 흘러나와 티도 많습니다. 안깨진 게 다행이지 사용 흔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유물로 선정이 된 것일까요?

제 생각엔 포얗고 고운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긴 세월 그래도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이리도 단단하게 서있는 것이 내나라 같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다리를 절고 어깨가 쳐졌어도 배곯지 말라고 보리밥이라도 거하게 내오던 우리네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면 너무 진부한 표현일까요?

돌아나가다가 다시 보고 가만히 들어와 다시 보는데 내눈이 맞았겠다 싶었습니다. 가장 비싸고 화려하다는 청화백자가 그득한 방에서 백자 달 항아리가 기도 죽지않고 매력질입니다. 만한전석에 마라샹거로 입맛을 돋우고 똥냠꿍을 들이킨 후 마지막에 숭늉으로 가셔낸 것처럼 개운한 마무리입니다.

저리 수수하고 흠 많은 항아리가 저렇게 당당하기도 쉽지않겠습니다. 딱 내나라 맞습니다.

#사유담 #달항아리 #보물1437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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