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보 이호영 기자] “그동안 정부나 대기업의 왜곡된 홍보와 무관심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고, 그들만의 이권을 챙기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전시만 봐도 전체 인구 149만 명 중 56만 명이 임금근로자입니다. 나 자신과 우리 가족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인 노동운동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노총 역시 그동안 이러한 차원에서 함께 달려왔고 앞으로도 현장의 불합리한 차별과 모순들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10월 한국노총 대지역본부를 이끌 새 수장으로 선출된 김용복(57) 의장은 철도청(현 코레일) 청소노동자 시절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근로자·서민들의 권리를 대변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해온 인물이다.
전국공공연맹 철도서비스 충청·영남노조위원장으로 7선째(21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으로도 3선(9년)을 역임한 지역 노동운동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대전시는 물론 각종 공단 고용·노동 관련 위원회 위원으로 실질적인 정책 개발과 추진에도 앞장서고 있다.
30대 초반 시작해 30년 가까이 대전지역 노동계 발전과 근로자 권익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는 김 의장을 만나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얘기를 들어 봤다.
-대전지역본부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1989년 조직된 대전지역본부는 산별대표자회의와 운영위원회, 대의원대회 등 3개 의결기구가 구성돼 있으며, 의장과 사무처장 지휘 아래 조직국·정책국·노사대책국·대외협력국·교육국 등 5개 상설 기구가 운영 중이다.
현재 한국타이어, 수자원공사, 시내버스, 택시 등 산하 32개 노동조합 5만여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 노조 가입이 늘고 있는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시기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지금은 노동법 개정으로 근로자 복지와 노동존중 등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지만 예전에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슨 불순운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어디 가서 떳떳하게 얘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집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시절이다.
당시 코레일 자회사에 입사하니 하루 10시간이든 15시간이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근로자들이 너무 많은 착취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조합에 가입하고 사측과의 고된 투쟁을 시작했다. 별별 회유와 압박도 많았지만 그동안 일궈낸 변화와 성장을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에 대해 보람이 크다.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 두 번이나 도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버스준공영제, 택시정책, 고용안정, 산업단지 등 우리 노동자들과 관련한 정책들이 대부분 대전시 현안사업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권 내에서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대전시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현실의 장벽이 만만치 않았다.
저는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전임 이종호 의장이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대전에서는 처음으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대전지역본부 조합원들이 혼연일체로 지원을 했고, 본인도 개인 이종호가 아니라 한국노총 대표로 대전지역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최근 들어 노동계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유럽, 특히 프랑스와 폴란드에서는 노동계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대우자동차 용접공 출신이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한국노총 사무총장까지 했다. 이밖에도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은 5명이나 더 있다.
사실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노동자나 다름없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지키고 담아내는 정치를 하는데, 노동경험은 오히려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한국노총이 택한 슬로건 역시 ‘현장과 함께, 국민과 함께’이다. 함께 상생하며 가자는 것이다. 일부 노동운동에 대해 색안경 끼고 안 좋게 보는 경우가 있지만, 관점이 다를 뿐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다만 일부 노동운동을 하면서 과도하게 개인과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과격한 방식을 일삼는 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정규직 전환 등 각종 기대와 달리 최근 노동계와의 마찰이 커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탄력근로제 적용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다. 탄력근로제는 노동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6개월 유예를 준다고 하지만 제조업 근로자들에겐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일례로 아이스크림 공장의 경우 계절을 타기 때문에 한여름 주 80시간 혹사를 시켜도 겨울에 줄이면 되기 때문에 사실상 제재할 방법이 없다. 또한 최저임금 산입범위엔 상여금과 수당까지 포함시켜 버렸다. 당연히 근로자에겐 임금삭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노총은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며, 앞으로 노동계 전체 연대를 통해 강력히 대처해나갈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도 사실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 역시 공무원·민간위탁만 늘리고 있지 질 좋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엔 경기마저 추락해 일자리를 잃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가시적 숫자가 아니라 보다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고용정책에 집중해야 할 때다.
-대전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허태정 시장이 일자리·창업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사실 대전 청년들은 대학만 마치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항상 얘기하는데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창업을 부르짖지만 누가 확신도 없이 거기에 청춘을 바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장에서 일해보면 알지만 고용효과도 말처럼 크지 않다.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지금은 의지도 노력도 없는 것 같다. 떠나는 것도 못 막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 주안을 두고 대전지역본부를 이끌어갈 것인가.
근로자 권리와 복지가 최우선이다. 각 사업장에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우선 대전시생활임금위원회 활동을 통해 올해 내년도 외부 용역직까지 1200명 정도 혜택 대상을 확대했다. 후년부터는 5개 구청까지 생활임금을 전면 확대해 총 3200명이 혜택을 받게 된다. 임금도 1만 원 수준으로 약속했다.
택시요금은 6년 만에 2800원에서 500원 올리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택시노동자들에게 인상효과가 돌아가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는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한 달에 200만 원 벌기 어려운 구조다. 요금이 인상이 사납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가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대전산업단지도 정비사업을 한다고 하지 비좁고 환경이 안 좋으니 있는 기업들이 떠나가고 있다. 하루 속히 기업하기 좋은 환경, 근로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전시민과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전시민 149만 명 중 56만 명이 근로자다. 그만큼 노동운동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 모두의 행복을 위해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관심을 꼭 부탁드린다.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역시 대전시민과 조합원, 노동자들을 위해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 역시 대전지역본부의 모든 사안에 대해 운영위원회 등 협의체를 통해 투명하게 이끌 것이다.
아울러 대전지역본부는 현장의 애로사항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상담소(☎042-489-0405)를 운영하며 상시 지원을 펼치고 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담 없이 찾아와 상담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