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맹자의 어머니와 심장부이론
[김창현 칼럼] 맹자의 어머니와 심장부이론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12.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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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의 자식교육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한다.

처음 묘지 근처에 사니 맹자는 장사(葬事) 지내는 흉내를 내고 돌아다녔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시장 근처로 갔더니 이번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흉내를 내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어머니는 결국 서당의 근처로 이사하고 맹자가 예의범절을 갖추는 것을 보고 그 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한국인들의 주거패턴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한국인의 가장 강렬한 욕망 중 하나는 ‘자식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환경’에 입지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강남 개발에 앞서서 소위 명문 고등학교를 정부시책으로 강남으로 이사했던 것도 이런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환경이 인간을 결정한다는 소위 ‘환경결정론’은 21세기에도 유효한 것 같다.

환경결정론은 제국주의적 ‘지정학’(geo-politics)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환경결정론을 주창했던 지리학자 맥킨더는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 소위 심장부(heart-land)을 점령하는자가 세계를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이론은 지금 시각에서는 다소 과격해보이지만, 독일 지정학(geo-politics)에 영향을 주어 나치 정권의 영토팽창정책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말하자면, 2차대전의 사상적 주범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지리가 역사를 결정한다는 식의 과격한 사상은 물론, 후세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DNA 속에는 ‘환경결정론’이 유유자적하게 잠재되어 있는 듯 하다. 돈을 벌려면 돈이 모이는 곳에 가야 하고, 공부를 하려면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세계정복을 하고 싶었던 러시아와 독일은 유라시아의 심장부로 진출했고, 자식 공부를 잘 시키고 싶은 부모들은 강남으로 이주한다. 전자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후자는 주택가격상승으로 이어졌다.

환경결정론은 ‘결정’(determination)이라는 표현 때문에 종종 비합리적 이론으로 오해 받는다. 인간의 삶이 환경에 의하여 미리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치 빠른 개체들은 지금 이 순간도 어느 곳에 가야 집값이 오르고,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환경결정론은 ‘인간은 다른 종(種)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장소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는 문장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거처를 옮기는 ‘이사’야 말로, 환경결정론에 대한 존중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증거(representation)가 아닌가 싶다.
맹자의 어머니는 환경결정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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