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도 선거처럼 도전과 선택의 연속”
“내 삶도 선거처럼 도전과 선택의 연속”
[충남일보가 만난 사람-36] 변해섭 대전시선관위 지도과장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8.12.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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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이호영 기자] 지독하게도 가난하던 시절. 한 사발 죽과 고구마로 허기를 채워야 했던 삶이 싫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도시로 뛰쳐나와 자동차정비공장, 주유소, 제과점, 인쇄소, 봉제공장을 전전하던 소년. 뒤늦게 검정고시에 뛰어들어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허리를 다치는 불운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 소년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어엿한 공무원으로 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사에서 변해섭(57)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과장이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3급 부이사관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중앙에서 6명, 지방에서 4명, 총 열 손가락 안에 꼽힌 그의 삶이 주목받는 것은 그동안 겪어온 남모를 인생 굴곡과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부단한 노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하면 특별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배움엔 끝이 없고, 제 꿈 역시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제 삶 자체가 선거처럼 도전과 선택의 연속인 것이죠.”

중학교 검정고시 출신으로 불우한 환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룬 변 과장을 만나 잔잔한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최근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는데, 개인적 소감은?

선관위는 사실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당, 후보자,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기관이다. 그런 면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상대가 수긍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신조로 삼아 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에게 ‘변해섭이 이야기 하는 것은 공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쌓였고, 그것이 또한 저의 자산이 됐다. 개인적으로 사생활과 공직생활에 특별한 흠이 없고, 선관위의 기본인 중립성과 공정성 가치에 충실했던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려준 것 같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상당한 마당발로 통한다.

선관위 복무 28년이 됐는데, 울산과 세종 2년 6개월을 빼고는 줄곧 대전에서 근무했다. 사실 지역의 정치인들이 모두 저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단순한 직원 대 고객의 업무적 관계가 아니라 애경사를 함께 하며 한 번 맺은 인연은 절대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세상 돌고 돌면 또 만나는 것이 인생인데, 업무로 만난 사람도 소중한 인연이 된다.

그렇다고 선관위 본분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공사를 구분해 이해와 수긍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법과 선거를 다루다 보니 처음엔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노력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중엔 결과와 무관하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곤 한다.

-누구는 ‘인간승리’라고 표현하던데,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가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청댐 수몰지역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중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겨울이면 죽 한 사발과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싫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틀 뒤 바로 대전시내로 나왔다. 그때가 집 나이로 14살, 자동차정비공장, 주유소, 제과점, 인쇄소, 봉제공장을 전전하면서도 공부는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야학을 다녔다.

그러던 중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어린 나이에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됐는데, 결국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뒤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해 19살에 공고에 진학했고, 수술 후유증으로 군대도 취직도 어려워 고민 끝에 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1984년부터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에 근무하면서도 야간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꾸준히 이어갔고, 1990년에는 충남선관위로 전입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그동안 대학원 석사학위도 받았고, 박사과정 진학도 준비 중이다.(웃음)

-그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가 있다면.

1995년 6월 27일 열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아무래도 고생도 많았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당시 시장, 구청장, 시·구의원, 시·구 비례대표 등 6개 선거가 치러졌는데, 동시지방선거에 대한 인식과 제도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열리다 보니 물량과 인력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그때는 공명선거에 대한 개념도 희박한데다 과태료도 없어 돈선거가 심했다. 유권자들도 당연히 후보자가 나오면 돈 주고 밥 사야 하는 줄 알았다. 그만큼 선거관리에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거제도가 완전히 정착되고 유권자들 의식도 높아져 오히려 후보자들이 밥을 사준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처럼 공명선거가 급속하게 정착된 것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려운 시기 민주주의 발전에 일조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뿌듯하다.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제도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

선관위가 처음에는 관리중심이었다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단속업무가 강화됐다. 보다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활동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선관위 활동 자체가 정치행위와 관련돼 있다 보니 정치인들 입장에선 권한을 확대하기보다 회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선관위 직원은 법 전문가가 아니라 공직자라는 점에서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전문인력 확충 등 새로운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부처와 위원회 별로 분산돼 있는 ‘국민 민주주의 교육’은 전문성을 가진 선관위가 통합관리,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내년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치러지는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조합장선거는 위탁관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주도적 개입은 불가능하다. 다만 3년 전 제1회 선거 경험을 통해 불법과 혼탁은 많이 사라졌고, 선관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도·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잘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한 많이 찾아다니면서 귀찮게 안내를 해 최소한 법을 몰라 위반하는 후보들이 사법기관에 가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문자메시지와 관련한 규제가 많이 완화돼 기부행위만 없으면 깨끗하게 치러질 것이다. 농협중앙회와도 업무협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퇴직을 3년 남겨놓고 있는데, 이후 계획은?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오점 없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의 일은 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선거판에는 그림자도 안 비칠 생각이다.(웃음)

가만히 있는 성격은 못되니 봉사활동도 하고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작년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박사과정에 진학해 공부도 더 해볼 생각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내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사람, 유능한 대표를 뽑는’ 선거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선관위는 그 경쟁을 공정하게 이끄는 심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대한민국 선거가 바람에 치우치는 감성투표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성투표를 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최종 결정은 유권자가 내려야 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국민들에게 직접 되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