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새해 ‘복된 신앙’
기해년 새해 ‘복된 신앙’
  • 탄탄스님
  • 승인 2018.12.3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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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대 객원교수,동국대 출강
용인대 객원교수, 동국대 출강

매년 종교 인구가 줄고 있다는 통계다. 더구나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 이미 오래고, 노인성 질환 치료에 국가도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더 크게 지출될 것은 자명하며, 세상의 패러다임은 인간의 근원적인 갈증과 영혼의 치유라는 종교에서 이제는 첨단 스마트폰에게도 밀리는 추세이다.

노인인구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종교적 패러다임이 새롭게 제시되지 않는 한, 종교에 귀의하거나 신봉하려는 신자와 신도는 갈수록 더욱 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종교 구성원 간의 불협화음은 세속인들이 곱게 보아줄 수 없는 지경으로 막가다 보니 이제는 종교의 슬럼화까지 내다보아야 할 실정이다.

한국인 일상의 삶은 4대 종교 가운데에서도 불교적이었으며, 근심에 싸여 있을 때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샤머니즘적 이라고도 진단한다.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메카니즘은 불교든 유교든 혹은 샤머니즘이건 혹은 토테미즘이건 별반 다름이 없을 것 같다.

일생을 금강경 한 구절 되새겨 읽어 본 적 없고 오직 염불 주력에만 힘써온 노보살(연로하신 신도)께서 늘상 장거리를 운전하는 자식이 걱정인지라 ‘차량안전부’라도 지니게 하면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하시며 수일째 부적 한 장을 노래하듯 조르기에 고민고민 하다가 한 장을 직접 그려드렸더니, 불전에 지극정성스런 기도를 올리고는 아들에게 전해 주셨다.

그런데 수일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앞뒤에 차량이 없었는지라 자칫 큰 사고를 면했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기별해왔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 아니겠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노신도에게 종이 한 장의 부적(符籍)은 금강처럼 단단히 외호하여 주는 방패와도 같은 것이었다.

부족하지만 승려가 건네 준 차량안전부를 지니고 있었기에 무사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보잘것없는 부적의 힘도 간절한 기원을 담아 전한 위신력도 모두 어머니의 역할이었으며, 그 어머니의 자력(自力)과 공력(功力)이 영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종교적 구원이며 믿음도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한 어머니의 기복적 신앙이라 하여도 소승적이라고 매도만 하여서 될 일이 아니다.

한갓 종이 쪼가리인 부적이라도 부처를 의지하여 마음의 위안을 받으면 그 에너지가 먼 길 나서는 자식에게 안식을 주고 아들은 그 위기상황에서 차분히 대처했으리라고 본다. 그깟 종이 한 장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부적을 한낱 미신으로도 치부할 수도 있고, 안정과 위안의 방비책으로 삼을 수도 있고, 수행공부로 회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주의 광대무변한 기운도 극미한 한 생각이 좌우하는 것 이리라.

신앙의 출발은 기복이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에서는 기복신앙을 배격하지만, 원초적으로 인간의 구복이나 구원의 손길을 기원하는 불심이나 신심이 옳지 않다고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지극한 기도와 염력은 한 인간이 나락에 빠져나올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기 마련이다.

절에 온 초심자들이 스스로 깊이 새겨 수행에 지침이 되는 《초발심 자경문》에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듯 지혜로운 이는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은 이는 생사를 이룬다”고 하였다. 오늘 내가 마시는 물은 과연 어떤 작용을 하는지 면밀히 반추해 볼 일이다. 오늘 내가 하는 작은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새해에는 간절히 국운 융성과 시민의 안녕, 그리고 나 개인의 영달을 빌어보기 위해 산사나 성당을 이르는 그 발걸음도 복된 신앙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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