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파와 '직업의 귀천'
폐지 줍는 노파와 '직업의 귀천'
  • 탄탄스님
  • 승인 2019.01.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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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동국대 출강)
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동국대 출강)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문명은 눈이 부시도록 발전을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은 날이 갈수록 황폐(荒廢)해져 간다. 더구나 생업의 근원인 일자리까지 갈수록 기계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면서 많은 사회문제를 양산하고,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사회 구성원 간의 많은 갈등과 대립의 원인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지나가며 노점상이나 폐지를 줍는 노파를 가리키며 자신의 자녀에게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공부를 독려하는 어느 젊은 엄마를 보며, 저렇게밖에 아이에게 직업 교육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수준에 이르도록 한 것도 결국은 오직 고시에 가문의 명운을 걸거나, 공무원 시험 광풍이 불 정도로 이 사회의 병세가 거의 미쳐갈 정도로 짙어진 것 아닌가 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유교적 이념이 수백 년 동안 지배해 오던 풍토가 일소되지 못하고 잔존해서인지,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이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한참을 뒤떨어진 작폐일 듯하다. 모든 직업 자체에 귀천(貴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자존감(自尊感)을 가지고 가치(價値)와 보람이 충만(充滿)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직업이 고귀한 직업이 되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은 주관적(主觀的)인 것이지 객관적(客觀的)으로 직업의 귀천은 없다는 생각이 옳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주위의 눈치를 살필 것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사회적 관습은 직업을 분명하게 귀천을 나누려 하고 있다.

직업의 귀천이 나눠진 가장 큰 원인이나 이유 중 하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질 우위의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급료가 적더라도 남 보기에 하찮은 직업이라도 자신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언제 내 직업이 귀하다 천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신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일에 몰두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건강관리도 되며 거기에 더하여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니 곧 ‘자아실현’이다.

불가의 가르침으로 풀어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할 수 있다. 일체유심조란 대승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법(法)으로서 진리(眞理)를 의미한다. 그 외 사물 전반 또는 사건을 얘기할 때도 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내가 내 나름대로 현상 세계를 보고 판단하는 것으로 주관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의미다. 객관 현상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 세상을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 철학의 주관적 관념론과 유사한 것이다. 연기의 이법에 따라 사물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수시로 변화하는 가운데 있으므로, 무엇이라고 딱 정해진 것이 없으며, 불교에서는 이를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자기의 주관이 정하는 것이므로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요, 그래서 직업의 귀천(貴賤)도 자기가 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정해진 직업의 귀천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이 세상에는 본래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직업의 귀천(貴賤)을 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주관적(主觀的) 판단(判斷)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본래 직업의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영국 런던 캔터베리 대성당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인 17세부터 성당의 사찰 집사가 되어 평생을 성당 청소와 심부름을 하였다. 하지만 자기 일이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맡은 일에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성당 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성당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던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의 두 아들 역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가 노환으로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다. 가족들 앞에서 의식이 점점 멀어지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가족들이 놀라는 가운데 그는 종탑으로 갔다. 바로 그때가 그가 평생 성당 종을 쳤던 바로 그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정확한 시간에 종을 치고 종탑 아래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에 감동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영국 황실의 묘지에 그를 안장해 주었고,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다. 그리고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날 하루는 일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공휴일로 되었다. 니콜라이의 직업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심부름꾼, 종치기, 청소부였지만 니콜라이는 자신의 의지와 헌신과 노력으로 그 일을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 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하찮은 것인지 고귀한 것인지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고 본다. 어떠한 일이든 진심으로 헌신하고 노력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다. 이 세상에 하찮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몇 푼 하지 않는 폐지를 줍는 노파가 없다면, 이른 새벽 어지럽혀진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세상은 온통 지저분할 것이다.

세상의 한 모퉁이를 아름답게 하는 예술가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골목을 아름답게 하는 이들이 진정한 예술가이고 묵묵히 작업복에 기름칠을 묻혀 가며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해내는 산업 전사들, 세상의 어떠한 일이든 진심으로 헌신하고 노력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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