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화백의 생애를 관통하는 걸작을 만나다
이응노 화백의 생애를 관통하는 걸작을 만나다
이응노미술관, 18일부터 소장품 특별전서 150여점 선보여
  • 홍석원 기자
  • 승인 2019.01.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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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홍석원 기자] 한국의 전통소재와 동양화의 기법을 서양미술과의 소통을 통해 풀어낸 고암 이응노 화백의 걸작으로 꼽을만한 150여점을 추려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이응노 미술관은 18일부터 오는 3월 24일까지 ‘2019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특별전’을 연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응노의 생애를 관통하는 대표작을 통해 그의 예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새롭게 보여주려 시도했다.

이응노는 한국 전통미술 바탕 위에 서구 추상양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모더니스트라 할 수 있다.

그는 먹과 종이, 전각, 동양적 추상패턴이라 할 수 있는 한자라는 전통적 재료와 소재를 가지고 추상화를 창작했다는 점에서 1950년대에 파리로 건너가 추상을 시도한 한국의 여타 화가들과도 차별된다.

이응노가 수묵과 서체를 바탕으로 완성한 1950년대의 반-추상 양식은 파리 체류시기에 문자추상 양식으로 본격적으로 발전해 갔으며 서양의 추상과 다른 동양적 감수성의 추상으로 전개되었다.

이응노라는 낯선 이름을 1960년대 파리 화단에 성공적으로 알린 문자추상은 한자에서 발견한 패턴의 가능성을 탐구한 초기 문자추상과 문자 구조에 주목하고 이를 건축적으로 해체 조합한 후기 문자추상으로 구분된다.

또한 이번 소장품 전은 군상 작품을 통해 군상 연작의 양식적 근원이 서체에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림 속 사람 형태는 글씨를 쓰는 붓놀림에서 파생된 이미지로 단순히 군상이 정치, 사회적 의미를 넘어 서체추상 양식의 완성, 절정에 오른 서체적 붓놀림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꾸준히 제작된 프린트는 마치 낙관, 전각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이응노의 문자는 추상을 따르고 있지만 한국의 인장 전통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전서체와 같은 서체를 문양처럼 활용한 추상, 세밀한 필선을 장식적으로 구사한 문양 등은 작가의 문자추상이 전각의 전통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추측케 한다.

그는 전각의 서체를 1960년대 종이 콜라주나 중봉을 사용한 회화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회화와 프린트는 양식적 연속성을 갖는다.

이응노미술관 관계자는 “이응노는 단순히 서양미술을 모방한 사람이 아니라 서양미술의 중심부로 건너가 동양미술을 가르치며 서양의 것을 쇄신하려한 대담한 실험가였다”며 “전시에 소개된 걸작을 통해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아래는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이응노, 군상, 1982, 185x522cm, 종이에 먹,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 군상, 1982, 185x522cm, 종이에 먹, 이응노미술관 소장

'군상'은 1979년부터 1989년 작고하기 전까지 이응노가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소재이다. 처음에는 군무(群舞)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1980년대에 들어가면서 격렬한 집단적 힘의 분출로서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군중들이 빽빽하게 보여 있는 화면이 등장하게 된다. 마치 노도(怒濤)와 같은 군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작이 모두 다른 형국을 하고 있으며 움직임의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화면 전체가 웅성이며 술렁이는 듯이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한 획으로 그려진 인간 형상이 초서체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면상에 나타나는 움직임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환희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하고 분노와 저항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화면이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뚜렷한 목적의식을 표현하는 것이기보다는 생동하는 인간사의 한 국면을 보편성을 담아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응노, 구성, 1978, oval 9 x 7.5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 구성, 1978, oval 9 x 7.5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의 문자추상은 고대 비문, 중국의 갑골문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판화는 바탕 위에 ‘새겨진 글’이라는 관점에서 문자추상의 기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전각에 많이 사용하는 전서체를 변형해 추상 이미지로 활용한 점에서 그의 판화는 전각 전통과 추상의 혁신을 모두 포함한다. 한자를 원판에 전각하는 기술은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기술로 이응노는 이러한 전통기술과 서체를 추상이라는 새로운 형식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장은 금, 은, 나무 등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인주나 잉크를 묻혀 찍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특히 전서체를 바탕으로 삼은 판화는 판형에 안료를 발라 찍는다는 개념에서 인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붉은색 안료로 찍은 판화는 낙관, 도장과도 유사해 보인다. 한자 자체가 글씨이며 동시에 그림임을 볼 때 판화, 전각의 전통은 그 문자의 양가성을 적절히 활용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응노, 구성, 1976, 47 x 48cm, 릴리프,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 구성, 1976, 47 x 48cm, 릴리프, 이응노미술관 소장

종이, 직물을 양각된 원판에 눌러 찍는 릴리프 판화(엠보싱 판화)는 매체의 두께와 깊이, 요철의 기복, 양감 등을 다채롭게 실험할 수 있는 판화 기법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릴리프는 돋을새김・양각을 의미하면 직물이나 니트에 릴리프와 같이 무늬의 부분을 불쑥 올라오게 하거나, 요철에 의한 표면변화가 있는 것을 말한다. 이응노는 문자 형태를 울퉁불퉁하게 프린트하거나, 사각형 프레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모양으로 오리고, 완성된 판화에 약간의 색채를 덧붙여 회화적인 느낌을 내는 등 다양한 효과를 만들고 있다. 릴리프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복잡한 문양이 눈길을 끈다. 전통 창살, 고가구 등에서 볼 수 있는 무늬들, 전서체의 변형 같은 문양의 반복에서 전통 모티브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응노, 구성, 1980, 36 x 23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 구성, 1980, 36 x 23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 독특한 문양의 작품은 식물문양이나 전서나 초서, 광초에서 변형된 패턴을 장식처럼 꾸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문양은 동물, 식물, 문자에서 패턴을 추출해 활용되었다. 연화문, 당초문 등은 동아시아의 장식미술 속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문양이고, 문자 패턴은 복과 장수를 비는 기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 찬 전통 건축의 단청은 문양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응노는 전통 문양에서 회화적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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