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2동 키다리 아저씨 “이웃 사랑, 작은 봉사의 실천에서”
갈마2동 키다리 아저씨 “이웃 사랑, 작은 봉사의 실천에서”
[충남일보가 만난 사람-51] 박상근 갈마2동 지역사회보상협의체 위원장
  • 김일환 기자
  • 승인 2019.01.2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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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김일환 기자] “저는 없어도 삽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조그만 정성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라도 봉사를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하루를 돌아봐서 봉사를 못했다는 마음이 들면 어딘가 허전함을 느낍니다. 봉사는 큰 것(일)이 아닌 작은 실천임을 알기에 작은 사랑이라도 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전 서구지역 봉사를 수십년째 이어온 박상근(58) 갈마2동 지역사회보상협의체 위원장은 23일 충남일보의 인터뷰에서 봉사의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립공원의 시설물을 만들고 들이는 사업 대표로 있는 박 위원장은 서구에 갈마동에 없어서는 안 될 큰(?) 인물이다. 큰 사업을 운영해서가 아니다. 서구에, 갈마동에 대한 지역 사랑이 첫째요, 누구보다 지역민을 아끼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봉사가 둘째다. 장애를 가진 그로써 장애인에 대한 사랑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키다리 아저씨’ ‘봉사왕’ ‘갈마동 큰 인물’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에서 보듯이 그는 갈마동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긴 한 것 같다.
 
그는 초등학교 11세인 4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전다. 한 달간의 혼수상태. 말 그대로 생과 사를 오갔다. 이후 1여년 간의 병원생활 끝에 퇴원을 했지만 장애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다.

그의 공식적인 장애 등급은 5등 급이다. 죽다 살아난 것 치고는 낮은 등급이다. 그는 장애를 인정하고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시쳇말로 '쪽 팔렸다'고. 그는 40대가 되서야 장애를 인정하고 나라에 장애등급을 신청했다. 

본인이야 어쨋든 그는 장애를 가진 순간부터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장애란 참 어려운 부분 같아요. 창피함과 수치감이 먼저 다가왔죠. 1여년간의 병원 생활도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죠. 장애인에 대한 관심.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 이었죠”

박 위원장은 학교에 대한 부적응을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겨냈다. 어렵게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와서 미술에 빠졌다고. 우연히 극장을 지나다 영화 홍보 그림을 보고 한번에 반했다고. 그는 그때부터 영화 간판을 그리는 일을 배우며 조그만 돈을 받으면서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를 생각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미술부에 들어갔어요. 뭔가를 그린다는 게 좋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옛 신도극장 미술부 연습생으로 들어가 한달에 20여만 원을 받으며 간판을 그리는 일을 했어요. 어려웠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며 봉사를 생각했습니다.”

이후 15여년간 광고계통에서 일하며 노력 끝에 1997년 창업을 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때 주위 도움으로 국립공원 내 안내표지판 등 각종시설물을 제작.시공하는 사업을 하며 지금은 어엿한 대표까지 이뤄냈다. 

박 위원장은 “한국 20여 국립공원 중 절반은 우리 회사가 시설물 공사를 수주 했을 것”이라며 수줍지만 자랑스러워 했다.

박 위원장은 봉사는 보여지는 것이 아닌 실천이라 생각하고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 생각해서다.

2012년 처음 서구 갈마2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과 서구 장애인체육회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도 봉사란 그런 것인 줄 알고 남몰래 실천하다 주위에서 그에게 알리기를 권했다. 봉사의 확대 개념이다. 남들의 본보기로 봉사를 실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에 완강히 거절했다. 하지만 듣다 보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봉사를 알리기 시작했다. 알아봐 주기를 바래서가 아닌 다른 이들도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는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서구 장애인체육회 운영위원장으로 어려운 이웃과 장애인에 대한 봉사를 적극 알리며 꾸준히 실천했다. 또 갈마2동 마을축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갈마동 단풍거리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봉사와 어려운 이웃 사랑이 남다른 박 위원장은 매년 서구청에 장학금과 온누리 상품권을 기부하고 있다. 사재를 들여가며 하는 일이다. 많게는 500만 원이 넘게 들이기도 한다.

명절때면 송편을 만들어 어르신에게 대접하고 여름이면 삼계탕도 내놓는다.

수십여년간 이어온 봉사라 다 나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단다.

주민자치 위원장 시절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그 소녀는 피아노에 소질을 보였지만 가정형편 탓에 피아노를 배울 수 없었다. 박 위원장은 이 소식을 듣고 한달 학원비 10여만 원을 1여 년동안 보냈다 한다. 자녀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함께였다. 부모가 연락을 해와서 얼굴만 뵙고 싶다고 할때도 그는 극구 사양했다. 소녀에게도 본인을 숨겨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가 연상된다.

“그 학생에게는 기탁금이 수치심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이돈도 부모님이 해주는 일이라 생각하게끔 해달라 이야기 했죠. 어린학생이기에 더 조심 스러웠죠”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남 생각 뿐이다. 그의 좌우명은 ‘최선을 위해 살자’ ‘남을 위해 살자’ ‘힘 닿는 데까지 봉사를 실천하자’다. 좌우명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그다.

그는 지역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대전시가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전 자전거사랑 전국연합회 대전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자전거 타기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행정자치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그는 이외에도 많은 표창을 받았다. 2011년 구정발전유공 서구청장상, 2012년 노인의 날 기념 유공 대전 광역시장상, 2013년 갈마2동 주민자치위원회 행정안전부장관상, 2014년 모범시민 대전지방경찰청장상까지. 그래도 자랑하는 기색이 없다.

박 위원장은 “봉사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그만 정성이 봉사고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이다”라며 “많은 이들이 어려운 이웃,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관심과 사랑을보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