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위험해!
[김창현 칼럼] 위험해!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9.01.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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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단어를 듣기도 힘들지만 90년대 대학생의 로망 중 하나는 ‘배낭여행’이었다.

언제 해외여행이 자유가 아니던 시절이 있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작된 것은 불과 30년 전인 1988년이다.
아울러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 세계를 여행한 기록으로 유명한 한비야의 여행기 역시 중요한 기폭제였다.

필자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대학에서는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으로 한비야의 강연을 열어주었다. 그녀가 현지인이 주는, 소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 우유를 먹으면서 친해졌다는 말을 들으면서, 언젠가 “나도 오지탐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인터넷에는 한비야에 대한 무시무시한 험담도 많다. 예를 들어 한비야는 현지인의 집에서 숙박하고, 현지인이 주는 음식을 먹는데, 그것이야말로 위험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필자 역시 테헤란에서 이란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다.
그는 2박 3일동안 머물면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밥, 과일, 물담배를 대령해주고, 공짜로 지역 유적지에 데려다 주었으며,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 아들, 조카를 모두 소개시켜주었다.

파키스탄 라호르에서도 대학생끼리 살고 있는 자취방에 초대되어 3~4일동안 묵으면서 그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융숭하게 대접해주면서도 그들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전히 그 친구들이 그립다.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일지 모른다. 중동지방에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한다.
‘현지인은 위험할 것이라는 상상’과 ‘존재하는 위험’ 중 무엇이 큰지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필리핀 출장차, 두테르테의 정치적 고향인 민다나오섬 다바오를 방문했다.

두테르테가 다바오 시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인 덕분인지, 안전하고, 정돈되어 보이는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공기는 깨끗했고, 과일은 맛있었다. 최근 다바오는 살기 좋아진 덕분인지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필리핀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정부는 “다바오 여행 자제”하라는 걱정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다. 또, 귀국할 때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콜레라 오염지역”에 다녀오셨으니 기침이나 고열 등 증상이 있으면 빨리 병원에 가시라는 문자를 친절하게 몇 번씩이나 보내주었다.

다바오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미세먼지가 코를 찔렀다. 다바오 주민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미세먼지 오염지역”에 다녀왔으니 위험하다. 귀국하면, 먼저 폐 검사부터 받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은 미세먼지 때문에, 필리핀은 콜레라 때문에 위험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대로, “위험사회”가 틀림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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