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설과 나태주 시인
문재인 대통령의 설과 나태주 시인
  • 탄탄스님
  • 승인 2019.02.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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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br>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 사저에서 설 연휴를 보내며 어느 시인의 시를 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통령은 설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날 아침 양산집 마당에 매화꽃이 피었다”며 만개한 매화꽃 사진을 함께 올렸으며, 이어 “찬찬히 살펴보니 들꽃도 피기 시작했고, 새쑥이 돋은 곳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가 생각난다”며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적었다.

‘풀꽃’이란 시로 꽤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공주시청에 근무하는 모 국장이 시집을 낼 때 일천한 글발로 함께 발문을 함께 써 준 인연이 있다. 그분은 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처럼 소탈하신 분이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중에 최근에 알게 된 참 좋은 시가 하나 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이다. 아내를 위해 신께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느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시인 아내의 절창 ‘너무 고마워요’이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나태주 어른신의 참 가슴 절절한 부부애이다.

대통령이 휴식을 하며 시를 음미하며 책을 읽는 나라의 우울한 인문학의 미래에 작은 서광이 비추는 듯하여 일순 기쁨이 충만한 연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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