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염화미소’를 지었던 부처님께는 죄송하지만…
[김창현 칼럼] ‘염화미소’를 지었던 부처님께는 죄송하지만…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9.02.11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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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옆 좌석에 서양인이 앉았다. 간단하게 “하이”정도로 인사를 교환했다.
영어로 뭔가 말을 붙여보고 싶었으나 그는 좌석에 앉자마자 헤드폰을 착용했다. 헤드폰을 착용하는 것은 “나를 건들지 마시오.”라는 전세계 공통의 신호이다.

이륙을 하자 승무원이 바빠졌다. 의외로 승무원은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한다. “음료수 내드리겠습니다.”, “창문 좀 올려주시겠습니까?”, “식사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식사 치워 드리겠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영어로 말한다.

옆자리 앉은 서양인은 승무원의 말과 행동에 거의 빠지지 않고 정확한 답변과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좀 오바다 싶을 정도로 “땡큐”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나는 승무원의 말에 거의 대꾸를 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굳이 말을 한다면, “닭고기 요리와 생선 요리 중 무엇을 드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닭고기 주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를 했던 것 같다.

승무원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주고받는 언어를 조금은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사람과 서양사람의 대화에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 회화를 처음 배울 때, 기본 인사는 “하우 아 유?”(How are you?)이다. 그러면 답은 “파인 땡큐 앤유?”(Fine. Thank you. And you?: 나는 좋다, (네가 안부를 물어봐줘서) 고맙다. 그런데 너는 어떻니?”)라고 답한다.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지만, 그 안에 상대방의 코멘트에 대한 정확한 반응과 대답이 꼼꼼하게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녕하세요”의 답은 “안녕하세요!”인 경우가 많다. 저 멀리서 사람을 보았을 때 서로 “안녕하세요.”라고 말 하면 다음 말을 꺼내기가 머쓱하다. 이미 “안녕하세요.”라는 음성을 교환했기 때문이다.

‘의미의 교환’보다는 그 상황에서 내가 놓치지 않고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음식점을 나갈 때 “안녕히 가세요!”라고 멀리서 외치는 인사를 들으면 어쩐지 “인사하느라 고생하신다.”는 생각마저 든다. “네, 또 올게요.”라고 답하는 사람도 없고 인사한 사람도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필자는 승무원의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의미의 교환’을 할 필요를 못 느꼈고, 내 옆자리의 서양인은 승무원의 서비스에 대해서 ‘어떤 응답을 해줘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발화의 ‘의미’보다는 ‘맥락’인 경우가 많다.

언어습관의 문화적 차이에 우열이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맥락의 대화’가 아닌 ‘의미의 대화’가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언어습관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말 안 해도 통한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보다는 정확히 ‘땡큐’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부처님에게는 조금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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