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마네이야기- 올랭피아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마네이야기- 올랭피아
  • 이지수 기자
  • 승인 2019.02.1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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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마네의 두번 째 화제작이자 문제작은 '올랭피아'였다. 악플에 정신병이 도질 것 같다던 마네는 욕먹을 그림만 그렸다. 알렉산더 뒤마 피스의 작품 중에 '춘희'라는 작품이 있다. 그 소설 속 인물 중에 즐거운 창부 이름이 올랭프였다. 나름 책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심지어 파리살롱전에 당당히 입상하여 살롱에 걸렸다. 마네에게는 인생의 쾌거였다.

올랭피아 앞에는 세명의 경비원이 붙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지팡이로 후려치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안돼서 나중에는 손이 안닿는 높은 곳에 전시했다. 그 그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미술관 예절때문이라고 혹평했다.

저돌적인 창부 빅토린 뫼랑의 멜랑꼴리한 눈빛, 벗은 몸, 그럼에도 환상적으로 아름답지않은 바디라인과 피부, 불편한 흑인하녀, 꽃다발, 치켜 선 고양이까지 모든 상징이 발칙했다. 감히 아프로디테인 것처럼 앉아서 뒷골목 추잡함을 고급진 살롱으로 밀어넣었다.

신사들은 당황했다. 영화 믈랑루즈에서 아름다운 스파클링 다이아몬드 샤틴을 돈으로 사는 본인들이면서 누구나 십대 애인 하나씩은 꿰차고 있으면서 수면아래 민낯은 내가 아니라는 듯 마네를 비난했다. 당시 파리에는 돈많은 신사의 후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계층의 여인들이 따로 존재했다.

마네는 그러거나 말거나 파리의 사실적인 모습을 담았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풍자가 아니라 사실이라며 기도 죽지않았다.
잘 보면 그닥 아름답지도 않다. 그림 속 침구부터 커튼 벽지도 그저 그렇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것은 뫼랑의 젊은 나이 밖에 없다.

격한 비난에 마네는 지쳐가도 뫼랑은 신경도 안썼다는 후문이다. 끝내 화가가 되어 살롱전시에 수차례 당선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150년 전 파리를 온통 전쟁으로 만들었던 마네는 적어도 한 사람의 지지를 받게 된다. 그것이 너무 고마워 마네는 그 남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게 된다.

#사유담 #마네 #올랭피아 #영원한모방 #빅토린뫼랑 #인상주의의아버지 #오르세#그림에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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