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호 경제칼럼] 국가 부도의 날 ‘IMF 경제학’ 이야기
[금진호 경제칼럼] 국가 부도의 날 ‘IMF 경제학’ 이야기
  • 홍석원 기자
  • 승인 2019.02.20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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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금개발원 연구위원대전과학기술대 겸임교수
한국연금개발원 연구위원
대전과학기술대 겸임교수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경제 주권을 잃었던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의 민낯을 드러낸 영화로, 경기가 어렵고 삶이 팍팍한 요즘,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던 그 시대의 생활상은 큰 공감을 얻었다. 1997년 11월 21일, 경제 부총리가 특별 기자회견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공식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국가 신용도가 추락했고, 해외에 갚아야 할 채무가 1,500억 달러가 넘는 위기상황이었다. 우리나라가 부도의 위기에 몰렸고, 회생을 위해서는 외부의 지시와 간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우리나라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IMF로부터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실화들을 영화로 만들었다.

1997년 말의 상황은 참혹했다. 1996년, 드디어 한국이 OECD에 가입했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제 태풍이 몰아쳤다. 재계순위 14위인 한보그룹이 도산하고, 7위인 기아그룹이 뒤를 이었다. 한보와 기아의 부도로 150억 달러를 상회하는 부실채권이 일시에 발생했으며 1997년 11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다. 대기업의 도산이 잇따르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은행과 증권회사 등도 연쇄적으로 위기에 몰렸다. 엄청난 숫자의 회사원, 노동자가 실직 상태가 되었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유학생들이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IMF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에 실업자는 200만 명에 달했고, 기업의 파산에 이은 가정의 붕괴가 현실화 되었으며 아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필자도 당시 금융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픔과 살벌함을 직접 보고 느꼈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가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IMF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우리가 발버둥을 쳤고, 그래서 시작된 운동이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당시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에서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고, 1998년 1월에 이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KBS ‘금 모으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금모으기 운동은 4개월 동안 351만 명이 참가했으며 225.8톤의 금을 모았다. 그 결과 우린 예정보다 3년 빠른 2001년에 IMF로 부터 빌린 돈을 상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를 회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날마다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다. 바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국민들이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서 은행으로 가져갔다. 전국의 은행마다 금붙이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섰다. 금반지, 금목걸이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귀한 사연들이 담겨 있는 소중한 징표들이었다. 백성들이 나라의 빈 곳간을 자신들의 금으로 채우고 있었다.”

영화는 말미에서 현재를 다룬다. 미국 헤지펀드의 불안한 움직임, 강남 부동산 동향과 가계부채 폭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내경기가 매우 어렵다. 청년 실업률과 자영업자의 폐업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과연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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