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음덕… 5대 후손 ‘역적 누명’을 벗긴 예언가
조상의 음덕… 5대 후손 ‘역적 누명’을 벗긴 예언가
  • 탄탄스님
  • 승인 2019.02.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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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혈육이고 친족이고 남처럼, 아니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살다가 어느 날 조상이 남겨준 부스러기 콩고물이라도 있으면 분쟁의 여지로 얼굴 붉혀야 할 때가 있다. 먼 조상이든 가까운 조부모나 현세대의 부모는 후손들이 혈육들이 분쟁이나 법정소송을 하게 되는 막장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물론 돈이 안 되고 세금이나 내야 하면 떠밀다시피 안중에도 없다가 몇 푼 목돈이 될성싶으면 게거품 물고 달려드는 꼴들도 역겹지만, 이미 등기부상에 수십 년 되어 버젓이 세금도 내어온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려 윗대의 집안 어른을 상대로 소송 운운하는 패륜아가 내 주위에도 있다.

형제자매도 사촌도 다 그놈의 돈이 무엇인지 몇 푼으로 얽히고설켜 소송까지 가야 하는 현실의 불행을 백골이 된 조상들조차 원치 않을 이런 분쟁은 비일비재하다. 남의 일인 것 같지만, 장례식장에서나 재를 지내주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필자의 주변에서도 벌어진 일이어서 깊은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된다.

몇 대를 지내다 보면 형제자매도 또는 사촌도 결국은 먼 남이 되어 그저 문중이라 할 뿐, 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남처럼 되어 가지만, 먼 조상 때부터의 혈육은 쉽게 지워질 수 없지 않은가? 오죽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도 하고, 후대의 후손들이 다툼없이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는 지혜로운 조상님은 일찌감치 예지력으로 분쟁의 소지를 없도록 할 테지만, 또한 살아생전에 몇 푼이라도 재산을 분배해 줄 요량이라면 후손들이 화목할 여지라도 남기고 기여도나 효도한 대가를 고려해서 공평하게 재산을 배분하여야 한다.

고전을 읽다 보니 먼 후손의 일까지 세심하게 예언한 중국 송대의 유학자이자 시인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선생의 지혜로운 삶이 번뜩 가슴에 와 닿기에 소개해 본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이십 대에 벌써 상서의 지위에 올랐으며, 문장이 빼어나고 시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천 번쯤 읽으면 귀신도 보인다는 주역에도 밝았고, 학문이 높아 사방에 명망을 떨치던 분이다.

그런데 공부하느라 이십 대 후반에 가서야 뒤늦은 장가를 가게 되었다. 어느 날 결혼 후 신부와 첫날밤을 맞이하고는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형편도 아니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주역으로 점을 치는 젓가락 같은 모양의 도구)를 뽑아 자신의 점을 치게 되었다. 신혼 첫날 비록 하룻밤을 잤지만, 과연 자신의 아이가 잉태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다행히도 닭은 울지 않고, 날도 새려면 한참이 있어야겠기에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아들은 자기보다는 못하여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 팔자였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갈까가 궁금해졌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무난하였다. 이렇게 한 대 한 대 점쳐 내려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5대손은 중년에 이르러 ‘역적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렇게 점을 쳐보는 가운데 어느덧 날은 새고, 그 날 이후로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서 임종을 앞두게 되어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을 하나 내어 주면서 “앞으로 살아가다가 집안에 어떤 변고가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거라. 만약 너의 대에 큰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또 다음 대의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함을 전하라”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었으며 맏며느리에게서 다음 맏며느리에게로 함은 계속 전달되었다. 그런데 5대손부 대에 와서 정말 집안에 큰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 남편이 느닷없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역적은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가문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밤새 끙끙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어 함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 상서에게 전하라.”

손부는 급히 집사를 불러 의관을 갖추게 한 후에 함을 들려 형조 상서를 찾아가서 전하라고 하였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 상서는 마침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입고 입궐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와서 나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록 100여 년 전에 작고했지만 워낙이 명망이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 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에 완전 통달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다. 그런데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통째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조 상서는 급히 함을 열어 보았다. 함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글자 열 자가 쓰인 하얀 창호지 한 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다. 그 창호지에 적힌 글은 놀랍게도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 (활여압량사 구아오대손)” 이라 적혀 있었다. 즉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었으니, 당신은 즉시 나의 5대손을 구해 줘라’는 뜻이다.

이후 형조 상서의 지시에 따라 재수사를 하여 5대손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니, 이 얼마나 묘하고 묘한 일인가? 소강절은 평생 자기 자손을 구하기 위해 5대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조 상서의 운수를 알아냈던 셈이다.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이 과연 인간의 영역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라 해야 하는 것인지…. 소강절이야 말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강절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몇 번을 읽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소설 같은 소강절의 예지력에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새해인듯 부푼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하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3월이 문턱이다. 이제는 추위도 주춤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이때에 ‘소강절 선생의 신통한 예언’을 되새기며 활기찬 봄날이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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