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재] 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우리지역 문화재] 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 이훈학 기자
  • 승인 2019.03.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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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이훈학 기자] 성주사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돼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성주사의 옛터에서 금당터로 추측되는 건물터 뒷편에 나란히 서있는 3개의 석탑 중에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탑이다.

이 탑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탑들과 마찬가지로, 상·하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기단은 각 층의 4면 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 놓았다. 그 위로는 1층의 탑몸돌을 괴기 위한 돌을 따로 끼워두었다. 

탑신부의 1층의 몸돌은 2·3층에 비해 훨씬 커 보이며, 한쪽 모서리가 크게 떨어져 나갔다. 남쪽의 한 면에는 문짝 모양을 조각했고, 자물쇠 모양을 그 가운데에, 자물쇠 아래로 짐승 얼굴 모양의 문고리 한 쌍을 배치했으며, 나머지 공간을 못머리 모양의 둥근 조각으로 채웠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어 보이며,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 끝이 살짝 위로 젖혀져 있는데 그 모습이 가뿐하다.

1층 탑몸돌을 괴는 돌의 형식이라든가,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된 점 등이 통일신라 후기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이 때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절터 안에 있는 다른 탑들에 비해 화려함과 경쾌함을 지니고 있으나, 가장 많은 손상을 입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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