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문화의 수장고, 프라도 미술관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문화의 수장고, 프라도 미술관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3.20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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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제아무리 미세먼지가 덮는다 해도 햇살에 살랑살랑 들뜨는 마음까지 그리하진 못하는 듯 싶다.

이렇게 날씨가 좋다 보니 그 옛날 왕족과 귀족은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수집품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렇다고 복잡한 도시 길가에 그 귀한 작품을 마구 걸어놓자니 체면이 안 서고, 가지고만 있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윳돈으로 아예 미술관 같은 건물을 지었는데, 그 장소가 어디인고 하니 바로 잔디 덮힌 푸른 초원 (Prato 쁘라또) 이었다.

바로 이 라틴어 '쁘라또'라는 말에서 스페인어 '쁘라도'가 나온다. (참고로, 한글은 된소리를 경박하게 여기는 터라 거센소리로 사용한다. 만물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음에도 관습상 못함이 못내 아쉽다). 우리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하나 지어 보자며 노래하는데, 이들은 잔디 위에 살 집도 아닌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건물 한번 지어보자 했으니, 스케일이 남달랐던 셈이다. 실제 스페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다섯 배에 달한다.

프라도 미술관은 그런 배경 속에 탄생한다. 자자손손 이어온 왕족이 약탈이 아닌 정당한 가격 지불로 수집했다. 그래서 마드리드 시민들은 다른 유럽 국가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만행에 비해 본인들은 월등히 수준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예술문화재 욕심이 기울어진 나라 경제에도 연신 국고를 열고 개인 사비까지 털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걸 메꾸기 위해 중남미의 식민지에서 온갖 지하자원과 금광석을 약탈하여 채웠을게 빤하니, 저들의 빛바랜 자존심은 전문용어로 '도긴개긴'이 아닐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개관 200주년을 맞이하는 프라도 미술관은 전통적으로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양과 질, 명성 모든 것에서 탁월하다. 다만 이것도 매년 순위가 바뀌는데 2017년 포브스 선정에선 무려 8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으니, 더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 밖에. 다만 2, 3위는 네덜란드 암스텔담 미술관들이 차지했는데, 이걸 조사하고 발표한 분이 에라스무스 대학교수라 매우 강한 의심이 든다는 점은 논외로 해두자.

스페인의 계몽 전제 군주였던 까를로스 3세의 애초 계획은 이 건물을 자연사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뜻을 못 이루고 죽었고, 얼마 안되어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다.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은 절반 정도 지어진 건물을 마굿간과 탄약고로 썼으니, 프라도 입장에선 갖은 수모를 겪은 셈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스페인은 페르난도 7세를 주축으로 복귀하여 비야누에바 건축가를 통해 마침내 마무리 지었다. 조부의 계획을 변경한 건 다름 아닌 왕비 마리아 이사벨의 입김이었다. 덕분에 지금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으로 발돋움 했으니, 아내의 말씀을 경청해야 함은 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가 보다.

스페인은 경제적인 수치만 보자면 우리나라 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다. 당장 거리의 차와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손에 쥔 휴대폰만 봐도 우리나라가 스페인보다 잘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문화 강대국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건 문화재의 가짓수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바로 대중이 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도록 예술에 대한 접근성의 문턱을 낮추었다는 데 있다.

어디든 영화관도 많지만 극장도 그 못지 않게 많고 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인파가 몰린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25세 이하 학생증을 소지한 학생들은 무료다. 학생들에게 예술 회화란 지루하고 교과서 속 갇힌 얘기가 아니라 수시로 들려보는, 조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작품을 보면서 나이에 따라 느끼는 감동과 해석의 폭이 달라진다. 지식의 성장으로 그치지 않고 감성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성인이 되면 아예 연중 회원권으로 구입한다. 세 번만 들어가도 본전을 건진다. 예술 작품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가 올라가는 건 덤이다. 심지어 그 1년권은 한 도시의 한 미술관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 자매결연 맺은 다른 박물관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다수의 시민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익히고 체득하여 삶의 일부가 되는 문화 강국!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글이 새삼 떠오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단순한 물질적 풍요를 넘어 인생의 폭을 넓히는 문화적 풍요를 모두가 고루 누려보기를, 나 또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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