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그 모습 그대로, 벨라스케스의 어릿광대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그 모습 그대로, 벨라스케스의 어릿광대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3.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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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프리모, 돈 디에고 데 아쎄도, 1640년.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살다보면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다. 여러분, 아름다운 세상이에요 하다가도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기분이 바닥을 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잘 풀려 승승장구 하는 듯 싶은데 돌연 악재가 연신 밀려와 사경을 헤맬 때가 있다.

그럴 때 억지로 기분을 극복하려면 되려 몇 배의 역풍을 맞아 더 힘들어지곤 한다. 일도 감정도 순리를 따를 때가 제일 자연스럽다. 기분 좋을 땐 더 흥 돋우는 음악을 듣고, 보고만 있어도 낭만 가득한 시상이 떠오르는 회화를 봄이 좋다. 반면 세상에 나만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과 인생의 무거운 짐에 지쳐 고달퍼 힘들고 슬픈 때라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음악과 한없이 고요 속에 침잠하게 만드는 작품을 가만 감상하며 조용히 성찰해보고 지친 나 자신과 교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만 보면 일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다 사람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간 지나 돌이켜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 그 순간 만큼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 충실해서 이성이 마비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나마 좋은 상황일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정 반대인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사 제치고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어릿광대 작품들을 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지금의 상황을 내려놓고 그 작품 앞에서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주인공들과 잠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선 그들을 화폭에 담아낸 세비야 출신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유럽인, 그 중에도 특히 스페인인의 이름과 성은 정말 길다!)에 대해 알아보자.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궁정화가로 발탁된 그는 당시 사조인 바로크식의 과장된 화풍을 따르지 않고 사실주의에 입각해 담백하게 인물을 그렸다. 펠리페 4세는 그런 허례허식 없는 그의 스타일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아예 벨라스케스 이외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 명예와 인기를 지닌 자라면 교만이 하늘을 찌를 만도 했을텐데, 그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잘 어울렸다. 왕족부터 서민까지 세상 모든 이들이 그에겐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원천이었다. 그 중 왕과 왕족 옆에서 익살스런 말로 기분을 달래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때론 억울하게 매도 대신 맞던 궁정의 어릿광대와 난쟁이도 벨라스케스의 친구가 되어 오늘도 변함없이 프라도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어릿광대와 난쟁이는 당시 유럽 상류 사회층에 must item 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뛰어난 능력이 아닌, 슬프게도 왕족과 귀족을 돋보여줄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그들 역시 자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보았다. 평소 그가 진정성 있게 대했기에 저들 자신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그린다 해도 순순히 응해줬을 것이다. 벨라스케스도 조롱도 과장도 비하도 하지 않은 채 지금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순수히 담아내어 그간 쌓은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얼굴에서 마음까지 읽혀진다.

1640년에 담아낸 어릿광대 프리모(또는 디에고 데 아쎄도 씨)는 자신의 몸 만큼이나 큰 책을 뒤적거리며 얼굴엔 피곤이 역력하다. 사실 울리는 것보다 몇 배 어려운 게 웃기는 일 아니던가. 웃기려면 서로의 인지 포인트가 다르니 더 공부하고 더 연구하고 부지런히 상대의 기색을 살펴봐야만 가능하다. 평소엔 히쭉 거리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이렇게 저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자연 얼굴에 모든 감정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온종일 여러 사람을 대하느라 에너지가 바닥난 나도 디에고를 보며 시간을 뛰어넘는 동질감을 갖게 된다.

어릿광대 프리모, 돈 세바스띠안 데 모라, 1645년.

그 보다 5년 뒤 그려진 작품을 보니, 이 분은 좀 더 성격이 있어 보인다. 삐딱한 얼굴, 화난듯 올려보는 시선, 무릎 위 다부지게 올린 굳게 쥔 손. 1645년 작품 어릿광대 프리모(또는 세바스띠안 데 모라 씨, 프리모는 원래 사촌이란 뜻인데 여기선 왕과 매우 친한 사이임을 말한다)는 꾹 다문 입으로 도리어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보시오, 내 눈을 피하지 마시오. 나를 잘 보시오. 그대, 많이 힘드시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는 어디 하소연도 못하오. 심지어 인간으로서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오. 삶은 원래 불공평 하오. 자책하지 마시오. 지나간 일에 그리 마음 쓰지 마오.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오는 것이오...

이상하다. 더 깊은 우울로 빠질 줄 알았는데, 자괴감과 분노의 광풍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어느새 세바스띠안의 엄중한 인상에서 자애를 느끼고 피폐해진 감정이 아물고 있었다. 그렇게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김덕현 Steve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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