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영원했던 재벌 총수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충남시론] 영원했던 재벌 총수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9.04.03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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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에서 비롯된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물컵 갑질 등의 파문이 유례없는 대표이사직 상실로 이어졌다.

조양호 회장이 주주권 행사로 인해 총수직에서 물러난 첫 번째 재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조 회장 연임안 반대의 의결권을 행사한 결정타가 됐다.

이번 사태로 앞으로 재벌 기업의 경영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주주 총회에 하루 앞서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하면서 주총 분위기가 뒤바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이미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소액투자자 상당수도 반대쪽에 표를 던지면서 대한항공 측의 전방위 방어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의 총수직 박탈을 막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총에서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국민들을 대표한 기관투자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권이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는 이른바 ‘관치’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일각에선 정권이 국민연금의 지분권을 지렛대 삼아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해 기업을 통제하고 지속 성장을 가로막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때문에 독립성 논란이 큰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나 노조, 여론에 밀려 지나친 경영 간섭을 하는 부작용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선 안 될 것이다. 오로지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대한 항공은 창립 50년 만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됐지만, 이번 사태가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문제는 대한항공의 미래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대한항공 주가는 한 때 급등하는 등 당장은 ‘적폐청산’이 기업 정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론 향후 대한항공 경영을 누가 어떻게 이끌지 아무런 청사진이 없는 상황이 된 게 현실이다.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일구며 장기간 경영을 맡아온 나름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온전히 대체할 전문경영인 찾기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런 경영인이 들어와도 지주사인 한진칼 경영권을 지렛대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조 회장 측과 분란이 생기면 기업 불안정성이 증폭될 여지도 없지 않을 것이다.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의 확정판결 전이라도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경영 능력과 무관한 개인의 일탈 행위를 문제 삼아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재벌들이 미운털이 박히면 제2, 제3의 대한항공으로 전락해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첫 퇴출을 계기로 대기업 오너들은 ‘회사 가치를 훼손하면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번 주총이 던진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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