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내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양형주 칼럼] 내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04.07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 이탈리아의 한 조용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인이 일어났는지 그 행적이 묘연하다.

살인범을 추적한 끝에 밝혀진 범인은 호르헤라는 나이 많은 수도사였다.
이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수도원에 와서 고행과 수도를 통해 열정적으로 진리를 추구했던 수도사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호르헤는 수십 년 전, 이 수도원에 있는 커다란 서고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해서 보게 되었고, 이 책은 아무도 읽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려고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호르헤는 이 책의 페이지마다 독을 바른다. 동료 수도사들이 서고에 와서 손에 침을 발라 책장을 하나씩 넘기는 동안 독이 그들의 혀를 통해 서서히 심장에 침투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책이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 2권 ‘코미디’였다. 코미디는 사람들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과장해 보여주어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미디를 통한 웃음효과가 교훈적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비극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 부분, ‘웃음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분노했다.

그에게 진리란 자신이 평생 그랬던 것처럼 오직 고행과 수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박한 웃음이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말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궤변을 중세인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더더욱 아무도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호르헤는 자신을 진리의 수호자요,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이런 웃음에 관심 갖고 힐끗거리는 동료 수도사들을 하나씩 독살했던 것이다.

호르헤는 이 책이 악마의 책이라 믿었지만, 사실 악마는 그 안에 있었다.
너무나도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며 이런 저런 삶의 압박감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정치, 사회, 연예계의 소식들을 들으면 어떻게 저렇게까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속에 악마가 들어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성경 마가복음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즉 악한 지향성들(evil intentions)이라고 한다(막7:21).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부터 살펴보자. 요즈음 내 속에서는 무엇이 나오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