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다르다 매력있다, 나는 그라나다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다르다 매력있다, 나는 그라나다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4.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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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알바이신 전경.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Spain is Different!

10년 전 슬로바키아에 있던 당시, 시내 쇼핑몰 내 있던 스페인 식료품점의 이름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걸까? 일단, 그 흔한 햄과 소세지 조차 뭔가 달라 보였다(여기 와 알고보니 돼지 뒷다리 자체를 주렁주렁 매단 하몬jamón이었다). 술도 와인이 아닌 상그리아sangría 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혼합주였다. 스페인이 다르다는 건 아마도 그 때부터 각인된 듯 싶다.

이후 유럽 전 법인의 콘퍼런스 모임에서 스페인 동료들을 실제로 만나 업무 관련 토론부터 만찬과 뒷풀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면서 정말 저들은 특이하고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훗날 아예 스페인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스페인은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며 놀라고 있다.

흔히 유럽이라고 묶어 부르지만 그 안에 45개의 저마다 개성 뚜렷한 국가가 있다. 그렇기에 유럽은 이렇더라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얘기하는 건 대단한 실례이자 큰 실수가 된다. 그 중에도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랍의 지배 하에 있던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기원전 대부분의 유럽이 로마식으로 판을 짰다 해도, 이곳은 북아프리카계 무어인의 통치에 들어가 피레네 이북의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15세기에 들어와 카톨릭의 깃발 아래 국토의 통일을 이뤘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세계 여행객을 끌어 들이는 요소가 되었다.

중세시대부터 다른 길을 걸어와서 그런 것일까.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굉장히 이국적인 정취가 강하게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페인 사람조차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 중에도 이곳 그라나다를 같은 스페인으로 여기기 보단 상당히 이질적 또는 이국적인 곳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라나다 젤리즈 타일.
그라나다 젤리즈 타일.

간판부터가 라틴어인 알파벳 보다는 아라비아어 풍이 느껴진다. 문화유적이나 기념품의 타일문양은 단순 채색이 아닌 정교한 기하학 패턴인 아라베스크arabesque 또는 젤리즈zellij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거리의 사람들도 교통규칙을 준수하며 질서정연하게 다니기 보다는 눈치껏 활보한다. 유럽식 까페보다는 아랍식 찻집이 더 많이 보인다. 여기가 대체 유럽이야, 아랍이야?

알바이신과 사크로몬테의 구불거리는 거리는 1960년대의 히피족이 환생했는가 할 정도로 옷차림과 머리 모양새가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딱 봐도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저마다 특이한 영어 억양을 지니고 있기에 다들 다른 나라에서 왔음이 감지된다. 나이대 마저도 다른 저들은 그럼에도 서로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국적인 스페인에서도 가장 이국적이라 할 수 있는 그라나다에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니, 그라나다가 저들에겐 자유의 또다른 이름인가 싶다.

그라나다 시티투어버스.
그라나다 시티투어버스.

우리는 다름을 두려워해왔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고 배웠다. 반만년의 유구한 전통있는 역사 속에 단일 민족으로 자리잡아온 우리는 ‘굳이’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하는 고맥락의 문화군에 살아왔다. 속담에선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마주하는 현실에선 정도껏 알아들어야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과 다르다는 건 존중받기보다 내가 틀린 걸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대세에 촉을 세우고 유행에 민감해야 됐다. 심지어 각 나이대에는 그 때에 꼭 해야할 게 정답처럼 정해져 있었다. 대체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그런거였을까?

오랜 세월 속에 수많은 주인을 거쳐간 그라나다는 같음에만 길들여져온 우리, 아니 내게 다르게 사는게 틀린게 아닌 그저 다를 뿐이라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르기에 매력있음을. 사실 다르다는 그 차이점은 껍데기일 뿐, 결국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이방인이라 할 지라도 마음에서 이미 소통이 시작됨을, 그라나다는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있었다. 강풍이 아닌 뜨거운 햇살에 여행객이 입던 옷을 벗듯, 나도 자연스레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그라나다에 매료되어 한발씩 다름의 매력으로 빠져 들어갔다.

김덕현 Steve.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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