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그들의 까딸루니아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그들의 까딸루니아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4.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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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스페인은 주마다 너무나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 어떻게 코르도바가 유럽일 수 있을까? 어떻게 똘레도가 그라나다와 같은 스페인일까? 그들은 실제 많이 다르다.

까딸루니아의 주도인 바르셀로나 역시 독보적으로 다르다. 마침내 2017년에는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지중해를 끼고 일찍부터 항구가 발달한 바르셀로나는 그리스 식민지였다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된다. 그러다가 카르타고를 정벌한 로마에 식민지가 된다. 어느 하나 빤한 날이 없었던 곳이었다. 신기한 건 외침이 많은 나라가 자기색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 같이 샌드백처럼 맞던 나라들은 특이하게 자기색이 강하다. 베트남이 그렇고 터키가 그렇다. 강한 물결이 들어설 때마다 그보다 강하려면 어지간해선 안됐을 께다.

독재가 시작돼도 왕정이 시작돼도 공화정이 찾아와도 까탈루니아는 오로지 까탈루니아로 살고 싶었다. 정신이 살아있다면 그 역사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 카탈루니아의 소망이었다. 믿음은 실력을 갖추었을 때 빛이 나는 법이다.

이 곳에 약간에 시차를 두고 구엘이 나고 가우디가 태어났다. 두 시대의 거물은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프랑스 박람회에서 코메야스 장갑 전시케이스에 반한 구엘은 그 젊은 예술가가 바르셀로나에 산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찾아가 단박에 가우디의 현란한 책상에 확신을 얻는다.

둘은 그 뒤 서로에게는 콩과 콩깍지였다. 가우디가 움직인다면 구엘은 아끼지 않았고 구엘의 진심을 알기에 가우디는 멈출 수 없었다. 서로의 필살기를 사랑하고 아꼈던 두 남자는 40년간 우정을 이어갔다.

둘은 아름다움에 같은 눈을 가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카탈루니아의 부활을 꿈꾸고 완성시켜간 것이다. 그들의 믿음은 바르셀로나의 특별함을 낳았다. 큰 자극은 더 큰 예술가들을 키워냈고 이 좁은 땅에서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가 나왔다.

어쩌면 구엘은 우리의 이회영이었다. 정신은 예술을 입고 카탈루니아를 부활시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독립시킬 구엘과 가우디는 어디에 있는가?

#사유담 #구엘 #카딸루니아#가우디 #사유담 #그들의나라 #영혼을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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