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칼럼] 녹색환경이 인류의 미래다
[한정규 칼럼] 녹색환경이 인류의 미래다
산은 인간의 정서적 스승
  • 한정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4.2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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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엔 숲이 있다. 숲 속에는 산새들이 지저귀고 파드득거린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무슨 소리이고 파드득하는 행동이 왜 인줄 모르지만 그들은 쉴 새 없이 그런다. 그들끼린 무엇인가 주고받은 이야기고 의미 있는 행동이겠지만 알 수 없다. 산은 그런 곳이다. 나는 그런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을 찾고 오른다.

고등학교를 다닌 열아홉 살 때다. 따갑게 내리쫴는 햇살을 가르며 제주시내 관덕정에서 한라산을 향해 발길을 뗐다. 관음사를 지나 무려 열두 시간을 걸어 밤늦게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도착했다.

 잔잔한 물속에 있는 둥근 달덩이가 몸을 적시고 더위를 쫓으며 한가롭게 총총히 떠 있는 별들과 놀고 있다. 곱고 부드러운 여인의 속살처럼 매끄러운 물 위를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별들은 깜박인다. 깜박이는 별들의 장단에 맞춰 달덩이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백록담의 장엄한 오페라 연주에 매혹이 돼 날 샌 줄 몰랐다. 동이 트는 순간 그들은 또 다른 무대를 찾아 떠나버렸다.
난 그날 이후 산을 즐겨 찾았다. 백록담을 품은 한라산만한 그런 산은 없었지만 그래도 새소리 물소리 벌래 소리가 좋고 바람이 살 끝을 스쳐지나가는 시원함이 좋아 산을 즐겨 찾았다. 반백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산을 찾아 떠나고 여행을 즐긴다.

산은 마음을 편하고 포근하게 해준다. 정신을 맑게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런 산을 오르고 내릴 때면 자연 속에 묻혀 깊이 잠든다.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산을 오르고 내리고를 하다 보면 등산로를 삶의 터전으로 한 가냘픈 나무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손끝에 닳아 상처투성이가 된 뿌리와 줄기를 볼 땐 어쩌다 이런 곳에 뿌리를 뻗어 저렇게 되었나? 씁쓸한 생각도 든다. 줄기는 물론 가지까지도 사람들의 손에 닳고 닳아 껍질이 벗겨져 번들번들하게 된 나무를 보면서 그래도 저 나무는 비록 이런 곳에 있지만 산을 오르내리다 지친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주고 몸을 지탱해주며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달리 보였다.

그걸 보며 사기(詐欺) 등 못된 짓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사람 몸에 붙어 영양분을 갈취하며 사는 기생충을 떠 올렸다. 나무에 붙어 진액을 빨아먹으며 사는 겨우살이를 생각했다. 소 궁둥이에 붙어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진드기를 떠 올렸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도 많기도 한데 저 나무는 자기 몸이 부서져도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나무로 숲을 이룬 산이 좋다. 남을 배려하고 희생과 봉사정신이 강한 사람 같은 그런 나무로 숲을 이룬 산이 좋다.

숲을 이룬 나무가, 찍찍 지저귀는 산새들이, 산골짜기 졸졸 흐르는 물이, 나무 사이사이를 스쳐 지나며 내는 바람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자연환경이 좋다.
그런 자연의 모습 오직 산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그래서 자연은 산은 인간의 정서적 스승이다. 인간에게 희생과 봉사에 대한 가르침도 잊지 않는다. 산은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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