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전설을 넘어' 호셉 마리아 수비라치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전설을 넘어' 호셉 마리아 수비라치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5.14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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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천재가 나타나면 근방의 모든 것은 멈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나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고 긴 시간 그림은 멈추었다. 미켈란젤로는 이상적인 세상을 조각으로 남기고 조각은 멈추었다.

너무나 기술적으로 미학적으로 눈부셔서 예술가들은 낙담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올 때 무려 5만점의 작품을 남긴 피카소 때문에 현대미술가들은 절망했다. 이미 피카소가 다해먹어서 새로운 것이 없다고 젝슨폴록은 말했다.

그러나 넘은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 그것이 세상이 발전해가는 원리였다.
1822년부터 가우디는 43년간 성가족성당에 매달렸다. 그러나 세 개의 정문 중 단 동쪽문만 남기고 떠났다. 만들었던 당대에도 그 작품성은 이미 스페인을 넘어 세계에 닿았다. 좀더 살아서 문 세개를 다만들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신은 가우디에게 겨우 문 하나만을 허락했다. 가우디의 성격상 석고로 성당의 디테일을 모두 결정해두었을 것이지만 스페인 내전과 세계대전으로 도면과 석고모형은 대부분 사라졌다.

가우디가 죽고 30년 간 마땅한 건축가를 찾지 못하고 주요 골조만 가우디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6개의 사선으로 뻗은 기둥들이었다. 그러나 성가족대성당은 조각이 트레이드 마크이자 대표 표현기법이었다. 성경을 돌로 썼다고 할 만큼 압도적 상징과 주요 장면 묘사는 조각이 담당해야 했다.

해가 뜨는 동쪽은 탄생의 파사드였다. 가우디가 직접 작업지시를 했고 동쪽을 향해 나무와 이끼같은 조각들이 겹겹이 감싸오르고 그 곳에 사람과 짐승과 이야기가 틀어앉았다. 어찌보면 종유석이 흘러내리는 듯한 그 문은 감동적이다.

그 반대편이 수난의 파사드이다. 예수님이 돌아가던 그 날의 삼일을 담아냈다. 해가 지는 방향의 수난의 파사드는 빛이 지는 속에 가장 빛나야 했다. 수비라치는 잘해야 본전인 서쪽 수난의 파사드를 바라보며 1년을 꼬박 명상한다.

가우디를 존경하지만 가우디가 아닌 이상 가우디의 것만큼 만들 수는 없다. 수비라치는 가우디를 품고 수비라치가 되었다. 직선을 혐오했던 가우디를 알면서도 수비라치는 곡진 직선을 선택한다. 모던하다못해 축약이 극대화된 수난의 파사드는 매해 도마위에 올랐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머리는 정확히 네모지게 만들었다. 만들었을 때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건축자재 H빔에 달려 그것도 녹슨 상태로 아래를 보고 있는 예수님은 스케치만 해논 그림같았다. 세상은 경악했다. 심지어 예수님이 알몸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생명의 위험을 느껴야 했다.  축약했어도 모든 것을 노출했다.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표현이었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가 예수님을 나체로 표현했지만 곧 덧칠되었다.

그렇게 2018년 완성되었다. 흠씬 욕을 먹고 수비라치도 떠난 뒤였다. 단지 선의 감정 없음을 이용하여 주님 떠나던 슬픈 그 몇 일간을 담담하게 담은 수난의 파사드는 해가 질 때 극적으로 강렬하다. 그렇게 서쪽문에 고개를 빼고 서있는 사람은 동쪽문 만큼 많아졌다.

수비라치의 두려움은 오히려 수난의 파사드의 불안한 시선과 맞아떨어졌고 가우디로 들어선 수비라치는 끝내 수비라치가 되어 걸어나왔다. 그 결과 탄생의 파사드와 수난의 파사드는 완전히 다르고 완벽히 어울렸다.

전설을 넘어 조용히 자리를 잡은 수비라치는 겸손하지만 강력하다. 모순 속에 유난히 세련된 수난의 파사드는 이제 또다른 전설이 되었다.

#사유담 #가우디 #호세마리아수비라치 #성가족대성당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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