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나는 나입니다, 미로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나는 나입니다, 미로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5.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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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 미로, 1965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제 이름은 조안 미로, 카탈루냐 태생의 스페인 화가입니다. 제 고향 카탈로니아어로는 조안 이라고 하지만, 보통 저를 스페인식 이름인 후안으로 더 많이 불러요. 이름이야 어찌되었건 제 자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어렸을 땐 하루도 안 빼놓고 그림을 그릴 정도였어요.

그러다 아버지의 압력으로 그림 그리는 걸 멈추고 돈을 벌기 위해 상업학교에 몸을 담아야 했답니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한 저는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아요. 저는 다른 누가 아닌 제 삶을 살아가고 싶었거든요.

결국 아버지는 저를 다시 미술학교에 보내주셨어요. 저는 그림에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요. 당시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져봤어요. 눈에 보이는 사실에서 벗어나 남들을 따라할 것 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개성을 그대로 살려주는 초현실주의가 저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답니다.

눈물의 미소, 미로, 1973
사형수의 희망 I, II, III, 미로, 1974
사형수의 희망 I, II, III, 미로, 1974

그 중에서도 특히 상징과 기호를 통해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업에 저는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사물이 아닌 단순한 선과 몇 가지의 기호, 그리고 원색으로 이루어진 제 그림을 보고 처음엔 전혀 호응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더니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며 좋아해 주었지요. 저는 그저 제가 바라보던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을 따름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대로 그렸을 뿐인데, 사람들은 재밌다, 환상이다, 독창적이다 하더니 심지어 애들이 제멋대로 그린 그림 같다며 환호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은 대부분 해석이 안 되는가 봐요.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모르겠는데요. 그런데도 제가 붙여놓은 제목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보면 한바탕 웃고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저보고 천재 아니냐고 해요. 글쎄요. 저는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과 세계가 싫었어요. 거기서는 제가 온전한 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어렵거든요.

저는 그래서 복잡다단한 어른 보다 단순하고 간결한 어린아이가 좋아요.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똘망지게 말하는 당찬 아이의 시선을 저는 간직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자연을 좋아하잖아요. 저도 그래서 별과 새 그리고 따뜻한 여성을 위주로 그렸어요. 실은 제가 살던 때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정도로 혼란과 불안, 절망과 공포 그 자체였기에 저는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이 웃음과 희망을 되찾기를 바랐거든요.

새들의 기상 I, 미로, 1965
새들의 기상 I, 미로, 1965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하길 바라지만, 설령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실은 별로 상관 없어요. 저는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조안 미로 그대로 남아 있을 거니까요. 누구도 다 저를 좋아할 수는 없어요. 부모님 조차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좋아 죽겠다 하다가도 꼴도 보기 싫다고 몇 번씩 오락가락 하는데 가족도 아닌 남이 어떻게 저를 그저 좋다고만 하겠어요.

저는 다른 누가 아닌 저 자신 미로의 모습으로, 미로의 스타일 답게 살아갈 때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다시 말하자면 개성 있게 사는 거에요. 괴팍한 옷차림이나 값비싼 브랜드를 걸치고 힙하게 보이려고 남들 하는대로 따라가려고 애쓰는게 아니고요. 나 스스로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에요. 그게 바로 나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에요.

내 작품이 대단히 뛰어난 테크닉이나 섬세함이 돋보여서가 아니라, 많은 고민 끝에 내 생각을 진실되게 담았기에 보는 분들이 즐거워하고 함께 공감해 줄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 어린 아이 말투로 쓴 것도 그게 가장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그럴 때 나, 조안 미로는 온전한 미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어요. 단 하나 뿐인 존재이니까요. 나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요. 당신도 그래요. 사랑해요.

미로 미술관.
미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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