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여행의 종합선물, 세비야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여행의 종합선물, 세비야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5.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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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스페인 광장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어렸을 때 명절이 다가오면 기다려지는게 있었다. 바로 종합선물세트. 각진 상자나 바구니에 그득그득 담겨있는 걸 보면 그 사이즈와 가짓수에 뭐가 들었든 상관없이 일단은 행복해 어찌할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사는 곳도 달라지고, 철없던 어린이에서 그런 철없는 어린이를 둔 애아빠가 되었지만, 그 때 그 행복의 느낌이 남아서 지금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면 일단 큰 것부터 보는 편이다.

여행을 이런 종합선물에 대입시켜 보면 어떻게 보일까. 꺼내도 꺼내도 화수분처럼 계속 나오고, 부스러기 과자 하나만 있는게 아니라, 쿠키, 젤리, 파이처럼 종류도 다양하게 있다면 그 기쁨은 더 클 것이다. 여행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듣고 먹고 체험하는 것까지 오감을 고루 충족시켜준다면 그 감동은 더하지 않을까.

세비야는 그런 점에서 내겐 둘도 없는 종합선물로 한아름 안겨주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도시 자체가 내뿜는 화려한 색채가 눈을 사로 잡는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보랏빛의 자카란다가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 가로수를 담당하고 있는가 하면, 곳곳에 몇 겹의 세기를 껴 입었을 보리수가 널찍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오렌지 꽃의 진한 향기가 숨막히도록 황홀하다. 거리마다 심겨진 이름모를 화사한 나무와 꽃들도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게 만든다. 눈이 호강을 한다.

세비야 황금의 탑

뜨거운 햇볕에서 목이 타고 지친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고, 몇 모금 넘기면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취기를 전해주는 상그리아를 마셔야겠다. 방금 짜낸 생 오렌지 쥬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고도 상큼하다. 이태리에 젤라또가 있다면 스페인엔 엘라도가 있다. 입맛대로 골라 먹으며 잠시 테이블에서 그간 찍었던 사진을 보며 재충전해 보는 건 어떨까. 눈에 이어 입도 즐거워지는 순간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대성당과 알카사르 왕궁. 시간의 타임머신 속에 21세기의 나는 어느새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하면서도 정교함과 화려함,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과거 장인들의 역작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각종 장식과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니 책에서만 보던 수많은 용어와 갖가지 사건들이 퍼즐을 맞추듯 저마다의 상징이 머리에 들어온다.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더니 정말 그간 읽었던 글과 이야기가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공부할 때 아프던 머리가 체험이 되니 행복을 경험한다.

세비야 마차

왕궁 근처엔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렸을 적 구연동화 테잎에서나 들어보고, 크시코스의 우편마차 라는 피아노 소곡집에서나 보던 그 마차. 그림과 영상으로만 존재하던 마차가 눈 앞에, 그것도 사람들 오가는 곳마다 보게되니 정말 스페인에 여행 나와 있구나 실감한다. 마차에 오르자 더는 녹음된 소리가 아닌 따가닥 따가닥 경쾌한 갤럽에 몸을 내맡기고 피곤한 다리 쉬어주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호젓한 기분을 내자 여행지에서의 경험치가 기분좋게 올라간다.

마차는 시내를 나와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 공작부인이 1893년 세비야 시에 기증한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들려 아메리카 광장을 지나 김태희의 플라멩코가 선을 보이던 장소이자 스타워즈2의 배경인 이색적인 장소, 스페인 광장에 도착한다. 호방한 세비야의 기상이 그대로 녹아든 곳으로 통일 이전 네 왕국을 상징하는 4개의 다리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저마다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바쁘다. 타일로 장식한 48개의 주요도시를 죽 훓어보니 스페인 일주를 마친 기분마저 든다.

플라멩코

저녁이 되니 저마다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바삐 향하는 발걸음에 부산한 마음 추스리고 열정적인 공연에 같이 녹아들고 나니 그간 닫혀왔던 오감이 마침내 정점을 찍는다. 정점에 달하고도 여전히 그 열기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정열의 땅 스페인에서 종합선물로 받은 세비야를 이제 하나씩 꺼내 보며 그 여운을 길게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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