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생소한 ‘나’를 마주하는 용기
[양형주 칼럼] 생소한 ‘나’를 마주하는 용기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06.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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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글쓴이의 이름은 낯설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책이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구본형 이라는 이름의 40대의 회사원이었다.

이 책의 핵심은 더 이상은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이제는 익숙한 것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가 1인 기업이 되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주장에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열광했고, 이 책은 무려 30만권이나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익숙한 것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반발이 심하다. 그래서 규제는 많고, 변화의 유연성은 갈수록 떨어진다.

그럼에도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는 주장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초대형 국가적 재앙이 닥쳤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 정말 힘든 것이 있다. 그것은 익숙한 나와 결별하는 것이다. 적어도 수십 년간 알아오고 인정해왔던 ‘나’ 인데, 그런 나를 부인하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 어렵다.

우리의 자아는 내가 익숙하고 잘 아는 ‘나’와 내가 잘 모르는 ‘나’가 있다. 내가 잘 아는 나는 그동안 내가 늘 보고 익숙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잘 모르는 나를 마주할 때다. 보통 이런 나를 마주할 때는 나 스스로가 아닌 주변에서 나를 오랫동안 알고 관찰하는 사람에 의해서다.

주변 사람이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나를 보여주면 우리의 첫 반응은 무엇인가? 부인하고 분노한다. 익숙한 나 자신과 결별하지 못하겠다고 선을 긋고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용기있는 자기 부인은 구도자의 첫 걸음이다. 나는 그동안 몰랐던 생소한 나의 모습을 자주 마주하고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서로를 비난하고 분노가 만연한 시대 풍조 가운데 성숙과 변화의 핵심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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