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오감의 호사, 세비야 대성당 Ⅰ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오감의 호사, 세비야 대성당 Ⅰ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6.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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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외관
세비야 대성당 외관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밖에서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풍긴다. 안에 들어가니 위압감은 더해져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나게 된다. 어디에 눈길을 던져 보든지 호화찬란하다 보니 머리가 하얘진다. 평소 3첩 반상으로만 식사를 해오다 모처럼만에 단단히 마음 먹고 근사한 뷔페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끝없이 늘어진 음식 앞에서 과연 어느 것부터 담아야 할지 몰라 손만 빨고 있는 격이랄까. 세비야의 대성당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찬란함을 내뿜고 있었다.

정식 이름은 세비야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법이 있기라도 하는건지, 이름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사방 어디에서도 발길이 닿는 곳에서 이 건축물을 한번에 다 담아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97m 높이의 히랄다 탑에서 대성당과 시내 주위를 내려다 보며 파노라마로 찍어보려 애쓰지만, 그마저도 쉬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치여서 제대로 실행하기가 어렵다. 결국 눈으로만 담아보고 아쉬운 마음을 화보책자로 대신해 본다.

밖은 큼직큼직한 사암 벽돌로 괴어 있는데, 벽돌 마다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공식기록으로는 1401년 착공했다는데, 완공은 책마다 다르게 내놓는다. 하긴, 언제 끝냈다는게 무에 그리 중요할까. 단일 건물도 아닌 부속 건물들이 잇따라 생기고 수시로 이곳저곳을 보수하고 개축하던터에. 착공한지 육백년도 더 지난 입장에서 보자면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이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인과 인부의 수고와 인내가 담겼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이 대성당의 존재의 이유가 되지는 않을런지.

여느 스페인의 내로라 하는 대성당과는 다르게 세비야의 이곳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인만큼 쓸고 닦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기 라도 하는걸까. 아니면 레벨이 다르다는 걸 입장 시간만으로도 입증하고 싶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세비야 사람들이 게을러서? 아, 상상이 너무 지나쳤다.

세비야 오렌지 정원과 히랄다 탑<br>
세비야 오렌지 정원과 히랄다 탑

콧대높고 깐깐한 안내원의 인도 속에 건물 입구에 들어가 보니,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오렌지 정원이 먼저 펼쳐지고 시원한 분수대가 있어 성당인지 수도원인지 잠시 헷갈린다. 실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아랍의 영향 하에 있던 이슬람 사원이었다. 그래서 사면 벽을 둘러 치고, 안에는 기도 하러 들어가기 전 우두 의식을 행하기 위해 씻을 곳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이교도의 것이라며 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 했을텐데 막상 아름다운 정원을 보니 저들도 망설여졌나 싶다.

봄에는 하얀 오렌지의 꽃향기가 라일락과 아카시아를 혼합한듯 아주 진한 단내음이 진동 한다. 꽃이 떨어지면서부터는 오렌지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비록 관상용이지만 큼지막하게 열려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읽게 된다. 싱그런 녹색의 잎사귀와 진주황의 오렌지빛이 어우러지는 여름이 다가온다. 뜨거운 세비야의 오후가 오렌지 정원 가운데 분수와 함께 어우러져 본인도 모르게 연신 사진을 찍게 된다.

외부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으로 우뚝 솟아 세비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히랄다 탑은 대성당 정원에서 올려다 보니 미세먼지 하나 없는 창공 아래 존재감을 더 확고히 보여준다. 히랄다 종탑에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시내와 십자가 형상의 대성당 지붕을 보며 광활한 세비야를 담아보고자 애를 쓴다.

오렌지 정원 안뜰에서 시원하게 가슴 적셔주는 분수대의 소리와 햇살 가득 머금은 오렌지 빛의 향연이 복잡했던 머릿 속을 식혀준다. 그러자 대성당이 부른다. 준비운동 충분히 마쳤으니 이제 오감의 호사를 누려보라 한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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